입선 김미경



누구의 외상 줄이었을까. 선명하게 그어진 흙벽 위의 빗금들. 어느 선사시대 상형문자들 같기도 하다. 빈 주막 부엌 벽에는 아직도 외상을 갚지 못한 이들을 빗금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목마르던 뱃사공이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남긴 외상일 수도, 과거 길의 가난한 선비가 과거 급제하고 오면 꼭 갚겠다던 외상 표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늦은 오후 갑자기 방랑벽이 도졌다. 무작정 떠나고 싶어 달려간 곳, 예천 삼강주막이다. 주막 초입에는 현대식 주막이 새색시처럼 단장하고서 관광객들을 먼저 맞이한다. 파전이나 두부, 도토리묵 등이 솔솔 냄새를 풍기며 발길을 끌어당긴다. 원초적인 유혹을 잠시 뒤로하고, 옛날 주막부터 고개를 디밀었다.

삼강주막은 백여 년의 시간을 간직한 채, 늙은 주모처럼 오도카니 앉아있다. 마치 북적거렸던 옛 손님들을 아직 기다리는 것처럼. 주막 부엌으로 먼저 들어선다. 조그마하다. 주모 혼자 발 동동거리기엔 안성맞춤일 수도 있었겠다. 낙동강 칠백 리에 마지막 남은 주막인 삼강주막은 그 옛날 봇짐장수들이나 나그네들이 서글픔과 같았을 허기를 달래고, 하룻밤 묵어도 갈 수 있었던 숙식처였다.

부뚜막에 작은 찬장이 놓여있다. 그 안의 식기들은 뽀얀 먼지를 인 채로 깊은 잠에 빠져있다. 옛 주인의 따스한 손길이 닿으면 금방이라도 딸그락거리며 깨어날 것만 같다. 아궁이에는 두 개의 가마솥이 올려져 있다. 손님들로 넘쳐나던 주막집 살림을 짐작게 한다. 국솥에서는 뜨끈뜨끈한 국이 금방 끓어 넘칠 것 같다. 밥솥에서는 구수한 밥내도 솔솔 묻어나는 듯하다. 눈치도 없이 도는 시장기를 외면하듯 부엌 벽으로 눈길을 돌린다. 유리로 덮여져 있다. 자세히 들여다본다. 빗금들이다. 주막집 부엌을 여태까지 사선으로 보초 세워둔 저 빗금들.

그 옛날 주막집 주모의 외상장부다. 엄대라고도 했다. 예전 글을 모르던 평민들은 셈을 빗금으로 표시했다. 어느 아무개가 얼마란 표시는 전혀 없다. 길고 짧은 빗금들이 전부다. 갚은 것은 가로로 다시 그어져 있다. 오직 주모만이 알아볼 수 있는 암호 같은 것이다. 조그마한 부엌 흙벽을 외상 빗금으로 가득 채웠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주모는 빗금 그어둔 저 빚들을 모두 되받을 거라는 기대라도 했을까. 허기진 나그네들이 배불리 먹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배가 더 부르진 않았을까.

어디선가 불이 켜지듯 옛 뱃사공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막걸리 한 사발을 급하게 주문한다. 반은 흘리듯 꿀꺽꿀꺽 마시더니 ‘주모 외상!’을 외치고는 또 다시 뛰쳐나간다. 주모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히려 뱃길 조심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순간 빗금들이 일제히 일어나 화살처럼 가슴에 와 박힌다. 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저 빗금들을 남기진 않았던가. 돌이켜보니 빚지지 않은 곳이 없다. 숨 쉬고 살아가는 자연과 공기도 빚이다. 낳아주신 부모님에게는 더 말하여 뭣할까. 목숨까지도 빚졌다. 그뿐이랴. 생각해보면 이 세상 모두가 살아가는 우리에겐 빚이다. 어느 것 하나도 온전히 내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

한순간 마음이 무겁다. 빚진 자는 기억조차 못하고 사는 동안, 그 누군가는 저 빗금들을 그어놓고 되갚기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걸어온 길이 아득하다. 한 인연이 떠오른다. 믿었던 만큼 나름대로 베풀었다고 생각했다. 그 대가로 가슴에는 풀지 못할 매듭만 남겨두었다. 속상한 마음은 외상장부에다 빗금들을 마구 그어대고 있었다. 그 빗금들이 화살이 되어 나를 찌르는 줄도 모르고.

마음의 빗장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주막 뒤편에 나루터로 올라가는 길이 좁다랗게 보인다. 삼강나루터는 문경 주흘산맥과 안동 학가산맥, 대구 팔공산맥의 끝자락이 만나는 지점이다. 게다가 봉화에서 흐르는 내성천과 문경의 금천, 강원 황지에서 흐른 낙동강 원류가 합류하는 곳이다. 바로 수륙 교통의 요충지다. 삼강나루터는 경남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경북 안동 하회마을까지 가는 길목이었다. 또한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갈 때도 반드시 가쁜 숨을 잠시 내려놓던 쉼터였다.

삼강나루터에 올라서니 개선장군 같은 황포돛대가 늠름하게 매여져 있다. 돛의 색깔이 누렇다. 돛의 재료인 광목에 황톳물을 들여 방수와 방충을 했던 조상의 지혜가 바람에 펄럭인다. 한순간 웅성거림이 뒤에서 몰려온다. 관광객들이다. 기다렸단 듯 황포돛대가 금방이라도 노를 저을 기세로 펄럭거린다. 옛적에는 강물 위를 주름잡았던 몸임을 의기양양하게 뽐내면서.

나루터 옆으로 오백년 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묵묵하다. 시끌벅적했던 나루터의 일대기를 모두 안다는 듯 바람에 연신 머리를 주억거린다. 서산마루가 벌써 불그스레해졌다. 강에도 산 그림자가 내려앉는 중이다. 무작정 달려온 삼강주막 나루터에 걸터앉아 마음의 외상장부를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가두었던 마음의 빗금 하나를 그제야 지워버린다.

빈손으로 와서 이 정도면 그저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베푼 것은 베푼 것으로 족할 일이다. 그만큼 하늘 외상장부에는 가로의 줄로 그어져 있겠지. 나 자신도 그 누군가에게 마음의 빚을 남기지는 않았는지 조심히 돌아보며 살아야 할 일이다. 멀리서 주막 파전 냄새가 어서 내려오라며 나그네의 발길을 재촉한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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