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니까, 시월이니까/ 박제영

이 밤이 지나면 해는 짧아지고 어둠은 깊어지겠지/ 기차는 떠나고 청춘의 간이역도 문을 닫겠지// 춘천이 아니면 언제 사랑할 수 있을까/ 시월이 아니면 언제 이별할 수 있을까// 지상의 모든 악기들을 불러내는 거야/ 사람도 짐승도 벌레도 다 불러내는 거야// 이곳은 춘천, 원시의 호숫가/ 발가벗은 가수가 노래하고, 가수가 아니어도 노래하지// 지금은 시월의 마지막 밤, 야생의 시간/ 발가벗은 무희가 춤을 추고, 무희가 아니어도 춤을 추지// 불을 피우고 피를 덥혀야 해/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헤어져야 해// 아침이 오면 안개가 몰려 올 테니/ 마침내 시월을 덮고 춘천을 덮을 것이니// 사랑해야 해 우리, 춘천이니까/ 이별해야 해 우리, 시월이니까

- 소통의 월요 시편지 489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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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학자들은 중부지방을 기준으로 가을을 세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9월 중순부터 10월 초순까지를 초가을, 10월 말까지를 진짜배기가을, 10월 말부터 11월 25일경까지를 늦가을로 분류한다. 지금은 말하자면 가을의 최고 절정기다. 단풍도 마찬가지로 위로부터 상한가를 치면서 하강하고 있다. 단풍이 정점을 찍은 뒤에는 낙엽이 바닥에 나뒹굴 일만 남았다. 수종에 따라서는 이미 곳곳에서 바닥을 쳤고 이번 비가 내린 뒤로는 공원에도 뒹구는 낙엽으로 어수선하다. 곧이어 들녘엔 냉기만 가득할 것이다.

가을이 참으로 짧다. 하루가, 한 달이 또 한 계절과 한해가 이렇게 바삐 순환하는 줄 미처 몰랐던 건 아니지만, 가을이 퉁소구멍처럼 좁고 텅 빈 속으로 신속히 빠져 나갈 즈음에야 새삼 헛되게 보낸 시간들이 후회스럽다. 결실을 다 나누어준 저 강산이며 뜰은 여전히 장엄한데 세월잃고 쭉정이만 남은 내가 처량하구나. 결실과 감사의 가을을 다 보내고 이만치 겨울 초입의 늦가을에 들어서면 그리움과 아쉬움이 유독 깊어진다. 멀리 떠난 사람이 그립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가을이 저물어 가는 징조를 짙게 느끼게 하는 헤르만 헤세의 시 ‘낙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나뭇잎이여, 바람이 그대를 유혹하거든 끈기 있게 가만히 매달려 있거라” 그렇지, 낙엽이 바람에 휩쓸려도 지금은 그저 숨죽인 채 끈기 있게 가만 매달려 있을 때. 이 밤이 지나면 해는 더욱 짧아지고 어둠은 깊어질 것이며 기차는 떠나고 청춘의 간이역도 문을 닫겠으나, 춘천이 아니어도 사랑은 이루어지고 이별도 완성되리라. 지금은 쨍그랑 포도주 잔 부딪히며 그윽한 사랑을 나누기보다 숭늉냄새 나는 들꽃 차 한 잔으로 사는 이야기나 나눌 시간.

춘천의 시월을 한번 걸어볼까. 걷다가 해 떨어지면 시린 달을 쳐다보며 기울어가는 가을밤의 소피스트가 되는 거다. 시간나면 소양댐을 걷다가 청평사까지 가는 거다. 옛날의 그 청평사 계곡은 배를 타고 갔다가 다시 배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배 시간을 놓치면 꼼짝없이 근방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어야했다. 그래서 역사가 이루어진 청춘도 있었지만, 내가 오늘 떠나는 춘천은 그런 수작도 긴장도 필요치 않다. 의암호를 에돌다 월광이 부서지는 후미진 틈새로 새소리나 듣겠다. 달은 서걱거리는 떡갈나무 가지 사이에 걸리고, 별빛 총총한 하늘아래 ‘야생의 시간’ 시월의 마지막 밤이다. 그곳에서 사랑도 이별도 그 무엇도 꿈꾸지 않으리.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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