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수필대전, 서원(書院)과 오백 년 은행나무

발행일 2019-10-30 20: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입선 김복건

가을이 노란 은행잎으로 유혹한다. 갑자기 어디론가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든다. 나뭇잎은 지난날들의 사연을 가지에 걸어두고 함께 떠나자며 내려앉는다.

은행나무는 자기 보호를 위해 본능적으로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만 수나무는 냄새가 없다. 그래서 노란 잎이 되어 떨어진 황금카펫 길을 걸으면 참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잎들은 이곳저곳에서 나비가 되어 춤을 춘다.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바람과 어울려 춤사위를 하는 나비를 한참 바라보는 나의 눈이 젖어든다. 옛 직장에서 사표를 내고 쉴 때다. 매일 출근하였던 사람이 집에 있자니 갑갑하고 서성이자니 실업자라는 이미지를 줄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아들이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는데 직장을 잃었으니 맛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해줄 수 없었다.

무료하게 집에 틀어박혀 있던 어느 날 저녁, 아내는 바람에 날려 떨어진 은행 열매를 주워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빡빡 문질러 겉껍질을 벗겨 냈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고 통마늘과 함께 달달 볶아 내가 좋아하는 맥주 안주를 만들었다. “여보! 힘내세요.”하며 차려진 조그마한 상에는 남편에게 용기를 주려 노릇노릇 구워진 은행 열매가 있었다. 그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은행나무가 소수서원 입구에서 오백 년을 버티고 서 있다. 서원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첫걸음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차원에서 보고 느끼는 ‘생각의 서원’에 들어선다.

우리 민족은 위계질서와 단체생활을 중히 여겼다. 크고 많은 것보다 작아도 알찬 생활을 하였으며, 은행잎처럼 따스한 색감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원인 것이다. 풍기지역 사람들이 향촌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곳으로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도 훼손되지 않고 남은 서원 중 한 곳이다.

고려 말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안향 선생이 돌아와 주자학을 알렸기에 주세봉 선생은 위폐를 봉안하고 체계를 갖춘 것이 백운동 서원의 시초가 되었다 한다. 향교의 성격을 띠었지만 학문을 배우고 전수하는 지방 사립대학 수준이었다. 걸어서 안으로 들어서니 직선으로 일신재, 지락재, 학구재가 배열되어 있다. 스승과 제자들 사이에 각각 별도의 경계 건물도 없고 갑을 관계의 흔적도 없음이 예사롭지 않았다.

지금 시절에는 위계질서라는 명목으로 별도의 방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의견충돌이라도 있으면 부하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일쑤다. 그런데 그 시절에 스승과 한공간의 마당을 사용하였으며 함께 거닐며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과히 획기적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첫 직장생활 할 때만 하여도 대표자와 윗선의 간부 그리고 중간 간부들의 방은 별도였다. 윗선의 간부와 의논하고 업무를 추진한 후에 그것이 잘못되었을 때는 경영주에게 문책을 당하는 것은 윗선의 간부가 아닌 실무를 보는 중간 간부였기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나로서는 가슴 아픈 과거가 되었다. 함께 거닐고 좀 더 진지하게 즉시즉시 문제를 푸는 대화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다면 더 현명한 판단의 결과를 이뤘을 것이다.

경험 많은 현인을 뒤따르면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헤매지도 않을 것 같은 배움의 공간에 닿았다. 학구재 옆에 스승의 공방인 직방재와 일신재를 우측에 두고 나란히 세우지 않고 약간 뒤로 물려 사제지간의 예의를 엿볼 수 있게 한 건축물. 통상적으로 지체 높은 사람들은 별채 혹은 뒤쪽의 별도 건물을 사용하건만 소수서원은 동학서묘로 배움의 공간은 동쪽에 두고 제향은 서쪽에 세웠다. 스승과 제자가 한 대문을 사용했다는 것은 가시적인 질서 없이 일렬로 배열한 것 같으면서도 통일되고, 단아한 모습 속에 위계질서를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선비들이 학문을 배우면서 심신이 피로할 때, 잠시 거닐었을 것 같은 마당 한쪽의 소나무 아래 이르러 나도 걸음을 멈추었다. 선비처럼 먼 하늘을 보았다. 파란 하늘 저 멀리 흰 구름이 흘러간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은 흐트러진 몸맵시를 바로 하라는 듯 모자를 흔든다. 햇볕을 가리려 비뚤하게 쓴 모자를 고쳐 쓴다.

옛 선비의 문화 속에서 미래지향적인 것을 찾고 싶은 나의 마음이 행동으로 표출된 것일까? 다시 천천히 걷는다. 선조들의 서책과 영정이 모셔진 곳에 이르러 우측에서 좌측으로 옛 사람들의 예의 방식을 지키며 한발 한발 옮겼다. 당시 유생들은 어떠한 마음이었는지 더 많이 느끼기 위함에서이다.

오백 년 전 세월에서 한참이나 머물다 입구로 돌아왔다. 그사이 서원으로 들 때 맞아 주었던 나무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서 있었다.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노란 열매가 달려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큰 결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면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음을 나무는 말하려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세대를 지켜보았던 나무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고 없을지라도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하고 싶었나 보다.

매화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도 않고, 고운 향을 풍기지도 않지만 천년을 살아가며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였다. 그런 은행나무를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를 힘이 났다. 남편에게 용기를 주려고 구운 열매가 생각나서인지도 모른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열매를 구우면서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그루의 나무에서 맺히는 수천수만의 열매를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나무는 오래되고 자랄수록 더 큰 보답으로 되돌려 준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나는 길을 걸으며 오백 년의 역사를 읽었고, 의견 충돌로 어려움에 처했던 지난 시절도 오늘을 바로 세우는 기틀이 되었음을 인지하였다.

석양에 물들어가는 귀갓길에 아내의 눈물 같았던 오백 년의 토실한 황금 열매가 톡톡 떨어진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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