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확대가 능사는 아니다

발행일 2019-10-30 15:36:3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정시 확대가 능사는 아니다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최근 대입 수시와 정시의 장단점을 말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수시가 줄어들 경우 지방대는 정말로 불리한가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신입생 전형 방법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대학입시에 목숨을 거는가. 대학은 예비 취업 시험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학벌 사회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는 취업과 사회생활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명문대를 졸업하면 직장을 구하는데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구직 행위를 100미터 달리기에 비유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서울대를 나오면 출발선보다 훨씬 앞에서 출발하고, 명문대학을 나오면 그보다 좀 뒤에서 출발하고, 지방대학을 나오면 출발선보다도 한참 뒤에서 뛰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대학입학과 관련된 문제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대학입시는 내 아이의 생존과 관계되는 문제여서 언제나 사생결단이고 비장하다. 다른 것은 다 용서해도 대입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학부모들도 학생의 잠재능력이나 발전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수시전형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투명성과 공정성, 예측가능성이 보장되지 않는 제도라면 아무리 좋아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조국 전 법무장관 자녀의 대입과 관련된 문제는 수시, 정시 논쟁에 불을 붙였다. 학부모들은 자기소개서, 생활기록부, 내신 성적 등에 근거하여 신입생을 선발하는 학생부교과와 종합전형 비중이 너무 높다고 지적한다. 특히 비교과 영역을 많이 반영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은 합불을 예측하기 어려운 깜깜이 전형으로 특목고나 자사고, 대도시 부유층이 사는 좋은 학군 학생들에게만 유리하여 흙수저의 계층 이동을 막는다고 생각한다. 최근 리얼미터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정시 확대 찬성이 63.3%, 반대가 22.3%로 나타났다. 찬성의견이 반대보다 3배나 더 높다. 여론조사는 수시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수능점수로 뽑는 정시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시는 서류나 면접을 통한 정성평가보다는 구체적인 점수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고 투명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생부에 기반한 수시모집은 패자 부활전을 허용하지 않아 고교 3년이 너무 각박하다고 하소연한다. 원하는 명문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한 번이라도 시험을 망치면 안 되기 때문에 학교생활이 긴장의 연속이다. 부모님 세대는 고1, 2 학년 때 성적이 좀 나빠도 고3 때 열심히 공부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기능공적인 지식인을 단기간에 양산해야 하던 고도성장의 시기에는 사지, 혹은 오지 선다형 문제는 나름대로 순기능적인 측면이 많았다. 공정성에 대한 시비를 줄이면서 어느 정도 수준을 가진 학생을 쉽고도 빨리 변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창의성과 상상력이 중요한 시대다. 선다형 문제로는 이런 인재를 선발하기 어렵다. 그러나 불공정하고 결과에 승복하기 어려운 제도보다는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공정성 시비가 없는 쪽을 선택하겠다는 것이 다수 국민의 생각이다.

최상위권 대학들은 우수학생 입도선매를 위해 수시모집을 선호한다. 수시로 우수한 학생을 미리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중하위권 대학과 지방대학에게 수시는 모집정원을 사전 확보하는 수단으로 중요하다. 교육 당국은 정시를 늘이더라도 지방대학은 그 비율을 자율로 결정하도록 배려해야 한다. 조만간 지방대학은 전형요강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냥 ‘선착순’이라고 해도 정원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수시 인원을 줄이더라도 농어촌특별전형, 지역균형 선발, 차상위계층을 위한 특별전형 등은 그대로 유지해야 하며 인원도 줄여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든 중소도시나 농어촌학생들이 명문대학에 갈 수 있는 통로를 더 좁혀서는 안 된다. 대다수 젊은이들이 출신학교나 학벌에 관계없이 자신의 적성과 취향에 맞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면 대학진학이나 전형요강 따위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그런 사회를 꿈꾸며 그 실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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