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 김현식

이 몸이 죽어가도/ 가슴에 맺힌 사연들은/ 내가 떠난 그 후에도/ 잊히지 않을거야/ 이 내 몸이 병들어도/ 못 다한 말 너무 많아/ 수북수북 쌓인 눈에/ 쌓인 눈에 잊혀질까/ 이 내 몸이 죽어가도/ 가슴에 맺힌 사연들은/ 내가 죽은 그 자리에/ 들꽃 한 송이로 피어날 거야

- 시집 『지상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 (살림, 1992)

................................................................

김현식은 29년 전 1990년 11월1일 서른둘 젊은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해마다 그의 기일이면 음악방송에서 그를 추모했다. 올해는 김현식 보다 3년 앞서 1987년 11월 1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만 25세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유재하의 32주기이기도 하다. 쏟아지는 신곡들로 인해 히트곡 주기가 점차 짧아지고 왠지 가볍게만 느껴지는 가요계 현실에서 그들의 음악은 확실히 달랐다. 특히 김현식은 한국적인 서정을 록과 블루스에 녹여낸 최고의 싱어로 평가받는다. 이 시는 죽는 순간까지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이 기억되기에 충분하다.

누가 내게 애송시가 뭐냐고 물으면 우물우물 즉답이 신통찮을 수 있겠으나, 애창곡을 묻는다면 비교적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 사랑 내 곁에’ ‘사랑했어요’ ‘추억 만들기’ 그러고 보니 노래방에 가기만 하면 불렀던 곡들이다. 물론 나훈아와 조용필, 그리고 김광석의 노래도 레퍼토리에 몇 곡씩은 있지만 술기운이 좀 오를 때면 변변찮은 가창력으로 ‘골목길’과 ‘이별의 종착역’까지 김현식 풍으로 불러재끼는 걸 봐서는 나도 김현식의 팬이라 자처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김현식의 고독과 우울을 반복적으로 노래한다는 건 상당한 부담이 따랐다.

자칫 듣는 이에겐 노랫말의 상황과 가락의 분위기를 혼자 사는 나의 처지와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고음 부분에서 울대를 최대한 팽창시킬 땐 나 자신도 모를 응어리 같은 게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그걸 토해낸 뒤에 오는 위로는 컸다. 삶과 노래와 시대가 서로 유리되어 겉돌지 않듯이 그의 노래를 좋아하고 따라 부르는 사람들에게도 함께 아우르는 정서가 있다. 그만이 뿜어낼 수 있는 소리의 섬유질과 무언지 모를 시대의 울분과 ‘가슴에 맺힌 사연들’을 함께 경험하고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호소력 짙은 가창력 정도가 아니라 듣는 이로 하여금 영혼의 어떤 숭고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한다. 거기엔 어떤 알 수 없는 신비한 마력과 힘, 혼이 느껴지고 충동들이 존재한다. 확실히 김현식의 음악적 문법엔 예술적 광기 같은 게 있다. 그런 광기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한 지경으로 몰고 간다. 아랫배에 복수가 차고 피를 토하는 상황에서도 음악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으로 남긴 메모가 이 시다. 사실 시라기 보다는 노랫말이며, 사후 폭발적인 그의 인기에 편승한 상업적 소산으로 묶인 시집 속의 글이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는 누구보다 훌륭한 시인이었으며 뮤지션이었다.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바람처럼 사라져간 그 자리에 영원토록 피어있을 ‘들꽃 한 송이’이며 살아있는 진행형의 전설이다. 삶과 음악을 반추하는 일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유효하고 심연을 건드리며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대중의 사랑을 받던 연예인의 느닷없는 죽음은 그래서 유별난 것이다. 지난 10월27일 5주기를 맞은 신해철도 그렇다. 참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찰나여서 허망하다. 그래서 죽음이 더 두려운지도 모른다. 시월의 마지막 날 ‘지상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를 길에서 생각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