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종교개혁 기념일’과 한국 기독교



‘종교개혁 기념일’과 한국 기독교

홍덕률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502년 전, 1517년 10월31일이었다. 독일의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이 붙었다. 교황청의 부패와 교회의 일탈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유명한 ‘면죄부 판매’는 그 중의 하나였다. 주인공은 마틴 루터 사제였다. 1521년, 그는 사제직을 파문당했다. 그 일로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의 상징이 되었고, 10월31일은 종교개혁 기념일이 되었다.

물론 마틴 루터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실은 훨씬 이전부터 종교개혁의 불씨가 자라기 시작했다. 마틴 루터로부터 102년 전인 1415년이었다. 체코의 얀 후스 사제가 화형에 처해졌다. 역시 교회의 부패와 교황청을 비판했다는 이유였다. 37세에 프라하 대학 총장에 취임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그였지만, 바른 신앙과 정의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후스보다 40년쯤 전에도 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위클리프의 얘기다. 그는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의 궁정사제였다. 왕을 따라 로마를 방문하고 돌아온 1374년 이후부터 교황청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1381년, 봉건제 타파를 주장한 와트 타일러의 난이 터지고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의 사상과 설교가 민중봉기를 부추겼다는 이유였다. 1415년, 교황청은 이미 31년 전에 사망한 그를 이단으로 단죄했고 묘를 파헤쳐 유해를 불태우라고 결정했다.

기독교는 그들의 순교와 열정으로 시작된 것이다. 근대사회의 토대가 된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원칙을 위해서도 많은 이들이 죽거나 고난을 감당해야 했다. 순교의 역사는 20세기 들어와서도 이어졌다.

1945년 4월9일, 독일 루터교회의 행동하는 신학자, 본회퍼가 수용소에서 사형당했다. 히틀러가 자살하기 3주 전이었다. 히틀러 암살 모의에 가담했다 체포된 것이다. 그는 히틀러에 대해 분노하며 좌절했지만 당시 독일 교회들에 대해서도 절망했다. 평화주의자였던 그가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기도 했다.

나치 하에서 독일의 대부분 교회들은 히틀러에 무릎을 꿇었다. 독일을 재건할 ‘하나님의 선물’이라며 히틀러를 떠받들었고 나치에 적극 협력했다. 일제 강점기 때 신사참배와 전쟁 헌금에 앞장섰던 조선 교회들과 흡사했다. 해방 후 무소불위의 세속권력을 위해 기도하며 찬양했던 기독교 지도자들의 모습과도 빼닮았다.

물론 한국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본회퍼처럼 십자가 지고 순교했던 신앙인들이 적지 않았다. 일제 때 수차례 투옥되었다가 1944년, 옥중 순교한 주기철 목사가 대표적이다.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였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1910년 3월,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한 안중근 의사도 있었다. 그는 천주교 신자였다. 해방 직전인 1945년 2월, 27세의 나이에 일본 감옥에서 옥사한 저항시인 윤동주도 크리스천이었다.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6차례 투옥, 고문, 망명 등 고난의 삶을 살다 간 박형규 목사도 있었다. 그의 별명은 ‘한국의 본회퍼’였다.

종교개혁 기념일은 한국 교회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먼저 눈에 띈 것은 광화문과 청와대 앞의 대규모 집회와 기도회였다. 전광훈 목사가 주관한 집회들이었다.

듣기 거북할 정도의 막말 잔치였다. ‘대통령은 간첩 총지휘자다’, ‘대한민국을 김정은에게 바치려 한다’, ‘공수처법을 만들어 나라를 공산화하려 한다’, ‘공수처법이 만들어지면 5만명이 죽게 될 것이다.’ 참석자들은 아멘과 박수로 호응했다. 논리와 이성은 없고 가짜뉴스와 선동으로 가득했다. 사랑 대신 증오가 넘쳐났다. 기도회를 내건 사실상 정치집회였다.

또 있다. 자신은 본회퍼를 따른다고 했다. 대통령을 히틀러에, 현 정부를 나치에 비유한 것이다. 지나친 견강부회다. 극단의 지적 혼돈이고 가치 전도다. ‘집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우겠다’는 말도 했다. 구원받을 수 없게 하겠다는 뜻이다. 기독교 신자에게는 심한 저주다. 기독교 교리상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신에 대한 도발이기 때문이다.

‘방향잃은 신앙’이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저급한 정치와 ‘생각없는 믿음’이 결합될 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목회자와 신앙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신의 뜻을 참칭하진 말아야 한다. 혹세무민하며 예수와 기독교를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종교개혁 502주년을 맞아 품어본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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