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임기, 권력의 유한성

발행일 2019-11-04 16:03:2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대통령의 임기, 권력의 유한성

윤정대

변호사

“Memento mori.” ‘죽는 것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경구이다. 영어로 바꾸면 ‘Remember to die.’가 된다. 로마에는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장군에게 로마에서의 개선식을 허용하였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개선장군이 행진을 할 때 그에게 자부와 오만이 아니라 겸손과 한계를 생각하도록 그의 뒤에서 노예로 하여금 이 말을 외치게 했다고 한다.

로마가 인류 역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나라라는 데에는 이론(異論)이 없을 것이다. 로마는 2천5백여 년 전에 형성된 국가이지만 언어와 인종이 다른 남부와 중부 유럽, 영국, 이베리아 반도, 아프리카 북부와 중동 등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였다.

로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화, 법률, 종교에 있어서 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로마의 정치형태인 공화정은 근대 이후 전세계 대부분 나라에서 기본적인 정치제도로 수용되었다.

로마 지배층은 일상생활의 상당 부분을 노예에게 의존하는 대신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대해 사고(思考)하고, 국가를 운용하고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데 시간을 보냈다. 사고력이 높아진 만큼 로마인들은 실용적이었다.

그들은 명예와 지성을 가장 높은 가치로 생각한 반면 인간의 도덕성과 능력에 대해서는 한계를 인정했다. 특히 개인의 도덕성과 능력보다 당연히 집단의 도덕성과 능력을 신뢰하였고, 집단보다 제도를 신뢰하였다. 따라서 로마인들은 왕정을 거부하고 공화정을 선택했다.

로마인들은 왕정을 막고 공화정을 수호하기 위해 원로원과 민회와 같이 복수의 기관을 두는 등 권력을 분산시키고 국가의 주요 기관 간에 견제와 통제, 감찰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공화정을 위한 로마인들의 가장 탁월한 제도는 바로 국가의 중요관직들에 대한 투표와 임기제였다. 로마의 중요관직들인 집정관, 감찰관, 법무관, 재무관 등은 모두 투표를 통해 선출하였고 그 선출직들은 감찰관을 제외하고는 임기를 모두 1년으로 제한하였다.

오늘날 대통령과 같은 대권을 가지는 로마의 최고위직 정무관인 집정관(consul)은 임기가 1년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을 선출하여 1개월씩 교대로 6개월만 집정관직을 수행하도록 하되 서로 정책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복잡하고 병렬적이며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며 논쟁적이고 어쩌면 소모적일 수도 있는 국가 운영 체제 속에서 로마는 가장 위대한 나라로 세상을 압도하였다.

권력은 유한하여야 하고 통제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언제나 유효하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권력을 영구적으로 가지는 것보다 나쁜 것은 없다. 권력의 담당자가 계속적으로 바뀔 때 권력의 과오를 막고 실패를 최소화할 뿐 아니라 권력의 담당자들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국가는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반면 세습왕조인 북한과 같이 권력이 영구적이고 절대적일수록 권력의 과오나 실패로 대다수 국민들의 삶은 피폐하고 무기력해진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집권하자마자 고위 관직에 대한 대대적인 인적 청산을 감행하였다. 적폐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나라의 틀과 제도를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다. 변혁의 대못을 박고 이를 영구적으로 고착하기 위해 2,30년의 장기집권이 필요하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들은 무균상태의 사회를 이룰 것처럼 주장하지만 무균상태의 지상낙원은 이념적인 선동이나 선전에만 존재할 뿐이다. 현실에서는 반복되는 불균등과 불공정과 불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뿐이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도덕성은 차치하고 국가 운영 능력에 있어서 다른 집단보다 나은 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대통령의 5년 단임과 국회의원 4년 임기에도 불구하고 국민 다수의 합의 없이 국가의 틀과 제도를 바꾸는 것은 임기제의 취지에 어긋난다. 많은 국민들이 이 나라가 사회주의 국가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대통령 임기제의 취지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해가면서까지 국가의 틀을 바꾸고 변혁하라는 것이 아니라 국정을 운영하고 관리하며 국가를 통합하라는 데 있다. 국가의 운영은 과거와 미래의 연속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과거를 부정하고 미래를 도박하는 것은 개인은 물론 국가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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