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천생산 천룡사||하늘이 내린 산, 용이 지키는 사찰

구미시 인동동과 산동면, 장천면에 걸쳐 솟아있는 천생산.

천생산은 하늘이 내린 산이라고 불린다.

비록 정상이 406m로 야트막하지만 낙동강 너머 마주하는 금오산과 함께 구미를 대표하는 산이다.

낙동강 건너 서쪽에서 바라보면 정상이 한 일(―)자로 마치 함지박을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해서 방티산이라고도 부른다.

또는 병풍이 둘러쳐진 것 같다고 병풍산, 미덕암(미득암이라고도 부른다)의 모습이 사자가 하늘을 보고 포효하는 모습과 같아 앙천산이라고도 불린다.

다양한 이름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이 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그리 오래지 않은 작은 사찰이 있다.

◆하늘이 내린 산 천생산

하늘이 내렸다는 천생산은 임진왜란 때 왜적들의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천연요새다.

조선시대 인동부수와 학자들이 편찬했다는 옥산지(옥산은 인동의 옛 이름이다)에는 ‘천생산은 고을 동쪽 8리 거리에 있는데 삼면이 석벽을 깎아 세워 천연의 성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마치 하늘이 만든 것 같은 까닭으로 천생산이라 이름 불렀다’라는 글귀가 있다.

이 산 정상에는 아직 성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삼국시대 박혁거세가 처음 쌓았다고 전해진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모아 왜적을 물리친 곳으로 금오산에 있는 금오산성과 함께 경상도 산성 중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인동부읍지에는 임란 때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이 왜적을 크게 격파하고 이들의 병기인 조총과 창, 화살, 진천뢰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건을 얻었다고 전한다.

홍의장군 곽재우가 산성에 물이 많이 남아 있는 것처럼 왜적의 눈을 속이기 위해 흰말 등에 쌀을 쏟아 부었다는 미덕암(미득암)과 스님들과 박영 장군의 이야기가 전하는 땡그랑 바위는 천생산이 간직한 오랜 역사다.



▲ 1951년 종전 절터에 있던 기와집을 걷어내고 이춘백 화상이 지은 천룡사 대웅전. 일반적인 전각과는 달리 콘크리트로 지은 전각이다.
▲ 1951년 종전 절터에 있던 기와집을 걷어내고 이춘백 화상이 지은 천룡사 대웅전. 일반적인 전각과는 달리 콘크리트로 지은 전각이다.
◆천생산 중턱 오래지 않은 사찰 천룡사

그런데 미덕암 아래 산 중턱에 오래되진 않았지만 범상치 않은 작은 사찰 하나가 있다.

천룡사(경북도 구미시 천생산길 200)다. 1951년 이춘백 화상이 법당을 세우고 창건했다.

구미지역 조계종단의 대부분 사찰이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인 데 비해 천룡사는 제9교구 본사인 팔공산 동화사의 말사이다.

사찰을 지을 당시 경내에서 고려시대의 와당과 탑신, 축대 등의 유물이 발견됐다. 구전에 의하면 이곳에 약사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려 중기까지 이곳에 대규모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커다란 두 눈 부릅뜬 용 한 마리, 천룡사 지킴이

가을 어느 날, 선선한 바람에 몸도 마음도 가볍다. 오후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산을 오른다.

천생산 삼림욕장 옆 주차장에 주차한 후 조금은 거칠지만 포장된 도로를 따라 구불구불 길을 오른다.

▲ 천룡사 가는 길. 멀리 천생산 정상인 미덕암이 보인다. 길 옆으로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 천룡사 가는 길. 멀리 천생산 정상인 미덕암이 보인다. 길 옆으로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길옆 나무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노랗고 빨갛게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멀리 천생산 정상, 미덕암이 낙동강 쪽으로 고개를 쭉 빼고 내려다본다.

미덕암을 길잡이 삼아 조금 더 길을 오르니 오른편으로 제법 널찍한 공간이 나온다. 아마도 주차장 용도로 사용하는 곳인가 보다. 그곳을 지나니 큰 눈을 부릅뜨고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듯이 양각된 용이 객을 맞는다. 음지쪽에 있어서인지 온몸이 이끼로 물든 용은 입 안 가득 여의주를 물고 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 용의 모습이 다르게 보이는 건 착각일까. 너무나 생생한 표정에 살아있는 이끼로 치장한 탓에 금방이라도 자신을 붙들고 있는 커다란 바위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를 기상이다.

용은 절대 권력자를 표현하는 상징이다. 왕과 관련된 용포와 용안, 용상 등이 그것. 그런데 불교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용이다. 용은 고대 인도의 사신(蛇神) 숭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대개 통일신라를 전후해 불교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사찰의 창건과 관련된 것이 많은데 황룡사, 구룡사 등과 같이 용을 사찰의 이름으로 내세우기도 하였다. 물론 천룡사도 마찬가지다.

용은 불교에서 불법의 수호자로 여겼다. 불교에서 말하는 용왕, 용신은 팔부중의 하나로 불법을 수호하는 반신반사이다. 팔부중이란 천, 용, 야차, 건달파,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를 말하는데 신앙적인 면에서 호불신이나 호법신들이다.

또 불교에서의 용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청중과 불법, 도량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사찰 곳곳뿐만 아니라 탱화 등에서 용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찰 입구는 물론 법당 전면 기둥과 처마 밑, 법당 안의 닫집, 천장, 기둥, 벽, 그리고 계단 소맷돌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법당 기와 암막새에 용 문양을 넣은 경우가 있는데 이는 법당을 상서롭게 유지하고 건물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다. 용은 이외에도 물을 다스리는 신으로 목조건물인 사찰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주술적 의미로 사찰 곳곳에 용을 배치했다는 해석도 있다.

아무튼 용은 상상의 동물이다.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을 불법의 수호자로 만든 것은 불자들의 종교적 열망이었을 것이다. 이런 열망이 사찰을 더욱 청정하고 신비롭게 만들고 있다.

▲ 천룡사 삼성각 돌계단 아래에 있는 용 조각상. 장난스런 표정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불자들이나 등산객들이 크게 벌린 입에 동전을 던져 넣곤 한다.
▲ 천룡사 삼성각 돌계단 아래에 있는 용 조각상. 장난스런 표정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불자들이나 등산객들이 크게 벌린 입에 동전을 던져 넣곤 한다.
천룡사에는 금방이라도 승천할 것 같은 입구의 용 외에 삼성각 오르는 계단 앞에도 장난스럽게 생긴 용이 있다. 여의주를 물진 않았지만 날카로운 발톱을 새운 채 크게 벌리고 있다. 그리고 불자들이나 방문객들이 던진 동전 몇 닢을 넙쭉넙쭉 받아먹는다.



▲ 1992년 천룡사 신도들의 도움으로 세운 천생미륵대불. 높이가 자그마치 15m이다.
▲ 1992년 천룡사 신도들의 도움으로 세운 천생미륵대불. 높이가 자그마치 15m이다.
◆마애미륵불상과 큰 규모의 천생미륵대불

천룡사를 지키고 있는 용 바위를 지나 계단을 오르다 보면 햇살을 등지고 앉은 마애미륵불상을 만난다. 마애미륵불은 자연 암벽을 갈거나 깎아서 만든 불상으로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들고 56억7천만 년이 지난 후 사바세계에 출현해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이다.

1989년에 천룡사 대웅전 아래 큰 암벽에 조각한 높이 2.7m의 마애미륵불상은 기도하는 이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조금 더 올라 사찰을 지키는 쌍사자상을 지나면 넓은 마당과 종무소가 나온다.

넓은 마당에서 천생산 정상을 올려다보면 사찰과는 어울리지 않는 큰 규모의 건물이 있다. 2층 규모의 콘크리트 건물인데 이 건물이 이춘백 화상이 이곳에 있던 기와집을 걷어내고 지은 대웅전이다. 절집 같지 않은 전각이다.

종무소를 지나 국화향기를 맡으며 대웅전으로 향하다 보면 엄청난 규모의 대불을 만난다. 1992년 신도들의 도움으로 화강석으로 만든 15m 높이의 천생미륵대불이다. 그 높이만큼이나 장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천룡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극락전과 삼성각. 전통모습의 전각으로 처마의 선이 아름답다.
▲ 천룡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극락전과 삼성각. 전통모습의 전각으로 처마의 선이 아름답다.
이곳을 지나 오른쪽으로 향하면 극락전과 삼성각이 나온다. 전각의 모습을 갖춘 극락전과 삼성각의 처마는 한복의 아름다운 선 만큼이나 유려하고 아름답다.

또 새로 칠한 듯 단청이 곱다. 극락전에서 조금 떨어져 삼성각을 올려다보니 파란색 하늘이 감싸 안은 천생산 정상 미덕암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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