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정의에 대한 넋두리

발행일 2019-11-05 15:24:2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선택적 정의에 대한 넋두리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정의란 ‘올바른 도리’ 정도의 사전적 풀이에서부터 심오한 철학적 화두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마이클 샌델’의 저술이 보여주듯 정의가 비록 만만찮은 주제이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친숙한 용어이기도 하다. 어벤저스의 ‘정의의 사자’, 정치권의 ‘정의사회’, 경제학의 ‘분배적 정의’, 법학의 ‘절차적 정의’와 ‘결과적 정의’ 등 정의의 용례는 광범위하다. 정의에 대해 선뜻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사람도 일상생활에선 망설임 없이 정의란 말을 적시에 바르게 사용한다.

정의의 개념은 잘 몰라도 정의에 대한 판단은 비교적 쉽게 하는 편이다. 정의에 대한 판단이 가치판단인 까닭에 어떤 사안에 대한 정의 여부를 옳음과 그름으로 명확히 선을 긋기란 쉽지 않다. 정의에 대한 판단이 흔히 논쟁과 다툼으로 전개되는 소이다. 정의의 관점에 따라 편이 갈리기도 하고 편갈림에 따라 정의의 관점이 선택되기도 한다. 정치권의 진영논리도 그 파생적 산물이다. 보수나 진보라는 이념에 따라 편이 갈리고 편에 따라 특정사안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상대편의 주장은 선택적 정의라며 비판하고 자기편의 주장은 보편적 정의라 우긴다. 서로가 진영논리로 무장한 채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대화와 타협은 없고 갈등과 반목만 계속된다. 상대 진영을 선택적 정의로 매도하는 한, 통합과 화합은 물 건너간다. 각 진영은 견고한 성을 쌓는다. 갈등의 사회적 비용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포퓰리즘은 독버섯처럼 도처에 창궐한다. 포퓰리즘에 중독되면 금단현상으로 인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나라는 망조가 들고 민생은 도탄에 빠진다. 그리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이 그렇다. 칠레와 에콰도르도 진통을 겪고 있다.

악질적 흠결을 망라한 강남좌파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들끓는다. 상황이 일단락되자 약간 소강상태다. 검찰수사를 선택적 수사, 국민적 지탄을 선택적 분노, 강남좌파의 위선을 비난하는 시각을 선택적 정의라는 적반하장식 논리로 현 상황을 돌파하려는 움직임이 준동하고 있다. 이는 궤변에 다름 아니다. 선택적 정의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더라도 이를 정의와 달리 취급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선택적 정의도 엄연한 정의이고 우선순위의 문제에 불과할 뿐이다. 선택적 정의든 보편적 정의든 달성해야 할 정의임에는 다름이 없다. 비록 선택적 정의를 훼손하는 원인이 있다하더라도 정의의 본질이 변하는 건 아니다. 공정한 과정과 정의로운 결과를 말하려면 선택적 정의를 존중하는 자세가 우선이다. 비선택적 정의는 후순위 과제다.

주차위반 딱지를 끊겼다고 ‘왜 나만 딱지를 끊느냐’고 그 정당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주차장 확보라는 보편적 정의를 주장하며 주차위반 딱지에 선택적 정의라는 현학적인 멍에를 씌우는 시도는 졸렬하다. 주차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 불합리하긴 하지만 주차단속을 하는 일은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주차장 확보라는 원인처방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문제는 별개다. 그렇다고 선택적 정의를 ‘내로남불’로 악용하여서는 안 된다. 편견의 합리화와 편 가르기를 막고 내로남불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선택적 정의를 폄하하기 전에 비선택적 정의를 함께 안고 가는 노력이 진정한 진보다. 동일한 척도를 사용하는 것이 내로남불을 막고 포퓰리즘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 출발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분열에 직면하고 있다. 사사건건 부딪히며 실력행사로 승부를 가리려 한다. 주말마다 광장에 모여 사생결단으로 세력 대결을 벌이고 있다. 광장에 동원된 사람들의 숫자와 여론조사 결과에 목을 맨다. 상대방의 목소리엔 귀 닫고 자기목청만 높인다. 상대편은 적폐에 기껏 선택적 정의고 자기편은 보편적 정의다. 나라와 국민은 아랑곳없고 오직 정권유지에만 몰두한다. 나라 곳간을 풀어 돈과 사탕을 뿌리고 있다. 공짜의 달콤함에 취해 레밍족이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포퓰리즘의 늪에 빠지기 전에 국민과 야당이 뭔가 특단의 자구책을 찾아야 할 때다.

동일 진영 내의 선택적 정의도 문제다. 특정지역의 전략공천을 막아야 한다는 억지주장이 도를 넘고 있다. 전략인물의 콘텐츠가 빈약한 경우엔 전략공천을 막는 것이 정의로울 수 있다. 허나 자신의 당선이라는 이기적 욕망에서 전략공천을 막겠다는 의도는 결코 정의가 아니다. 인재영입이라는 또 다른 정의도 엄연히 존재한다. 전략공천은 우선순위의 문제이고 선택적 정의로 치환된다. 정의는 누구에게나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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