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점심은 어디에도 없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지난달 한국은행의 결정으로 기준금리가 저점을 찍었다. 하지만 시중에서는 이번 결정으로 경기가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한국은행이 이른 시일 안에 한 번 더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할 것이라는 기대가 강하다. 그럼 이런 기대는 도대체 왜 형성되는 것일까? 이유야 많겠지만 가장 강렬한 것은 그 정도로는 지금의 경기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시장의 확신 때문일 것이다.

통상, 중앙은행은 경기가 둔화 내지 하락할 때는 전통적으로 물가 수준을 고려한 기준금리의 인하를 통해 시중 통화량을 늘리고, 이를 통해 투자와 고용 및 소비를 촉진함으로써 경기 하방 압력을 완화하거나, 경기 흐름이 바뀌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는 금리를 내려 통화량을 늘려봐도 투자나 소비가 늘어나지 않아 오히려 통화가 시중에 풀려나가 순환하는 속도보다 통화량 증가 속도가 빨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 흐름도 악화일로에 있다. 시장에서는 만연한 물가 하락에 대한 우려감 즉, 디플레심리가 개선되기는커녕 현금선호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뜨거운 것은 국지적인 부동산시장뿐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중앙은행이 열심히 돈을 풀어봤자 은행의 당좌계좌나 가계의 장롱이나 금고에 그냥 잠자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지속하고 있는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오히려 투기적인 성향을 보이는 시장만 뜨거워지는 현상을 두고 소위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졌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중앙은행이 소위 제로금리 또는 마이너스금리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디플레로 장기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이나 유럽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바와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제로금리시대를 경험하게 될까? 만약, 지금 우리 중앙은행이나 정책 당국에 묻는다면 ‘설마’라는 기대 섞인 감탄사와 함께 ‘아니오’라는 답이 돌아오길 바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첫 번째는 경제의 생산성 제고가 고려되지 않은 채 기존에 추진되고 있는 정책 전반에 큰 변화가 없이는 금융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동시에 쓰더라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준금리(정책금리)의 인하는 초기에는 금융기관이 가지고 있는 채권의 장부가격이 실제로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와 보다 적극적인 대출 또는 융자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지만, 제로 또는 마이너스 금리와 같이 극단적으로 낮은 수준의 금리는 오히려 금융기관들의 수익성 악화를 초래해 대출 금리나 규모를 제한함으로써 금융긴축효과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자와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금리 수준을 리버설 레이트(reversal rate)라고 하는데 만약 이 상황이 된다면 오히려 경기에는 독이 된다. 이 상황에서는 재정정책도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

두 번째는 효율성이 현저히 낮은 방만한 재정 운용에 따르는 위기를 피할 길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어떤 이유로 경기가 갑자기 되살아나면 문제는 좀 달라질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시장의 디플레심리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유동성 함정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더더욱 재정의 역할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친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론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상식 이상의 저금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재정수지적자를 용인하면서 경제성장률을 상회하지 않는 수준의 국채발행을 통해 얼마든지 재정지출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동성 함정에서 빠져나와 경기가 성장경로로 회복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또, 그동안 얼마나 큰 재정수지적자가 쌓일지도, 얼마나 많은 국채를 발행할지도 그 누구도 모른다. 더군다나, 국채가 안전자산이라는 점과 정부가 중장기적으로는 재정 건전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점에 대한 시장 신뢰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물론 이렇게까지는 안 되겠지만, 만에 하나 이렇게 되면 정말 최악이다. 공짜점심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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