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이영춘

산다는 것은, 만나는 일이다 사랑하는 일이다 헤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빈 가슴 털면서 먼 산을 바라보는 일이다 먼 산 바라보며 그 안에 내 얼굴, 내 발자욱, 내 그림자 그려 넣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견디는 일이다 갈등하는 일이다 매일매일 육중한 시간에 눌려 실타래 풀어가듯 그렇게 인생을 풀어가는 일이다 수틀에 수(繡)를 놓듯 그렇게 인생을 짜가는 일이다 가다가 큰 바다에 이르면 거기서 내 얼굴 찾아 물기를 닦아 내고 또 가다가 큰 산에 이르면 거기서 한숨 돌려 휘파람 부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는 일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일 이것이 인생의 주제다 오늘도 우리는 그 주제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 다음 카페 <이영춘 시 창작 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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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님에도 마치 그것만이 생의 전부인양 부각되어질 때가 있다. 말하나마나 우리 모두는 세상을 홀로 살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부대끼며 살아간다. 살다보면 부모형제, 연인, 친구, 가까운 사람들과의 이별을 반드시 겪게 된다.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져 헤어져야하는 아픔뿐 아니라, 이승에서 뜻하지 않게 멀어져서 영영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 그 가운데 사랑이 있고 갈등이 있으며 사람이 있다.

불가항력의 헤어짐은 어쩔 수 없다 쳐도 나의 소홀이나 부주의로, 본의 아니게 내가 준 상처로, 서로의 오해로 내가 사랑한 사람들과 멀어지는 일은 없을까. 누구의 생엔들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안타깝게 멀어져간 사람이 어찌 없겠는가. 우리는 사람 때문에 아파하고 사람 때문에 울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의 일로 ‘빈 가슴 털면서 먼 산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조차 귀한 세상이다. ‘먼 산 바라보며, 그 안에 내 얼굴, 내 발자욱, 내 그림자 그려 넣는’ 멜랑콜리는 그리 알아주지 않는 세상인 듯하다.

‘산다는 것은, 견디는 일’이고 ‘갈등하는 일’임을 모르지 않는데 피하려고만 한다.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고뇌의 연속이며, 고뇌하므로 존재의 가치와 의미가 부여됨에도 골치 아픈 일이라 여기고 기피하려 든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기 보다는 아예 싹둑 잘라버리려고 한다. 나도 그랬다. ‘너 아니면 내가 못살 것도 아닌데’라며 쌩 까버린 적도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말로 상처주고, 그로 인해 풀리지 않는 상태에서 관계를 변하게 하여 결국은 멀어져버린 경우가 세상에는 다반사다.

하지만 실수를 알고 용기만 낼 수 있다면 엉킨 실타래는 얼마든지 풀 수 있으리라. 그것은 진실이 담긴 마음의 말 한마디면 된다. 진실은 어떤 상대방이든 간파할 수 있고 얼음장 같던 마음의 빗장도 녹일 수 있다. 사실 실수를 흔쾌히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보다 더 멋지고 용기 있는 모습도 드물다. ‘그렇게 인생을 풀어가는 일’이어야 마땅하고 ‘수틀에 수를 놓듯 그렇게 인생을 짜 가는 일’이 인생이거늘, 늘 휘청거리기만 했지 나 자신은 그러질 못했다. 그래야만 큰 산에 이르러 ‘한 숨 돌려 휘파람’도 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주춤주춤하면서 그렇게 멀어져서는 절대 안 될 사람들이 있다. 전화 한 통화면 휘파람을 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을.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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