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2019 수필대전 구름이 머무는 절 운부암

입선 박두흥

가을이 저물기 전, 단풍이 안내하는 구불구불한 길을 걷고 또 걸어 남향받이 언덕에 자리한 절집에 도착했다. 마음이 심란할 때면 이곳을 찾는다. 팔공산 비로봉 용맥이 암자의 뒷등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좌우 능선이 청룡 백호가 되어 포근히 감싸주는 절. 그 품에 들어서면 시름이 사라지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가림줄이 쳐져 있는 입구에서 범종 모양의 표지석이 먼저 중생을 맞는다. 가운데 ‘운부 선원’이란 이름이 크고 하얀 글씨로 아로새겨 있다. 그 좌우에 ‘천하명당’과 ‘조사 도량’이란 파란색 글귀가 또렷하고, 작은 글씨로 새긴‘북 마하 남 운부’란 말이 눈으로 성큼 뛰어든다. 스스로 천하명당이라 일컫고 남쪽 최고의 수행처라 할 만큼 바위에 글을 새긴 사람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팔공산의 정기가 모인 이곳은 선승들의 참선 도량으로 유명하다. 복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명당을 찾듯이 선승들이 깨달음에 가까이 가고자 명당인 이곳을 찾아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들 중에는 근․현대의 선지식인 경허, 성철과 같은 큰스님도 계신다. 성철 스님은 여기서 수행이 더 깊어졌으며 이미 오도송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세상과 단절되고 또 다른 세상과 만나는 이 수행 공간에서 스님은 무엇을 보았을까. 적막한 밤의 유일한 벗은 경전이었을 것이다. 기나긴 시간을 풍광과 물소리를 벗 삼아 자신을 성찰했으리라. 돌아보면, 곱게 키운 난초가 긴 기다림 끝에 꽃봉오리를 터트렸을 때, 나는 그 기쁨을 뭐라 형언할 수가 없었다. 하물며 스님은 평생의 꿈인 불도의 진리를 깨달았으니 그 벅찬 마음이 어떠했을까? 스님께서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토해냈던 오도송 한 구절을 되뇌며 짐작만 해 본다. ‘황하가 역류하여 곤륜산 정상으로 치솟고,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이 꺼지도다.……. ’

절 앞에는 계곡물을 막아 조성한 연못이 있다. 하늘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물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까지 들여다보이는 듯하다. 못 안쪽에 화강암을 깎아 세운 달마상이 보인다. 머리까지 덮는 긴 승복으로 온몸을 감싸고, 털북숭이의 우락부락한 얼굴에 입까지 굳게 다문 채 두 눈을 지그시 내려 감고 적정(寂靜)에 들었다. 범상치 않은 형상에 한참을 바라보며 달마가 이곳에 현신(現身)한 이유를 생각한다. 아상(我想)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이 가련했음인가? 아니면 이곳 선승들의 외롭고 힘든 싸움에 등불이 되어주려 했음인가?

궁금증을 안고 ‘불이문(不二門)’으로 다가간다. 절집으로 들어가는 문은 여기뿐이다. 문은 세상을 단절시키기도 하고, 또 두 세상을 하나로 연결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문기둥에 새겨진 주련(柱聯)을 소리 내어 읽는다. ‘탐진치심 내려놓고, 번뇌 망상은 연못에 두고 가라.’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뇌성처럼 정수리를 친다. 욕망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소멸시켜야 번뇌도 망상도 없는 불국토에 닿을 수 있다는 지혜의 말씀이다. 그 지혜를 찾아 얼마나 많은 선승이 이 해탈의 문을 통과했을까.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을 들인다.

돌계단을 올라 마주한 보화루, 단청이 없다. 소박한 게 꾸밈없는 선승을 닮았다. 이름이 보화루인 것은 이 절에 선불교가 퇴락하면서 잠시 화엄사상이 지배했던 자취를 보여준다. 신발에 묻은 먼지를 털고 누각에 오른다. 가운데 대들보에는 큰북이 매달려 있고 구석진 곳의 다탁 위에는 찻잔이 가지런하다. 그 옆 벽면에 ‘喫茶去(끽다거)’라 쓴 예쁜 나무판이 중생에게 차를 권한다.

한 잔 가득 우려낸 차를 마시며 단아하고 고졸한 멋을 풍기는 원통전으로 향했다. 법당 안에 정좌하고 있는 청동관음보살상(보물 제514호)의 자애로운 미소가 중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왼쪽에 ‘운부난야(雲浮蘭若)’란 편액이 걸린 선방이 있다. 흘려 쓴 글씨에 기운이 넘친다. 그 아래 툇마루에 걸터앉아 보화루 지붕 너머 하늘을 바라본다. 풍덩 빠져들고 싶은 푸른 하늘이다. 언뜻 사십오 년 전, 처음 참선을 익히던 시절이 그 하늘에 그림처럼 펼쳐진다.

포교당 법당의 차가운 마루에 어린 학생들이 둘러앉아 가부좌를 틀고 있다. 인생이 무엇인지,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해하기보다 또래와 어울리는 게 더 좋았다. 눈을 반쯤 내리감고 시선은 발 앞에 고정시켰다. 어깨 힘을 빼고 단전으로 호흡했다. 생각을 한 곳에 모으고 화두참구를 하는데 몰려오는 수마를 극복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캄캄한 내면에서 방황하다 탁, 탁, 탁! 따끔한 죽비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리곤 했다.

차츰 고요 속에서 마음이 집중되었다. 문득, 나는 처음인데도 힘이 드는데 스님들은 이 고행을 어떻게 견뎌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번뇌가 생길 때마다 쫓고 또 내쫓고, 모든 것을 비워내야만 부처가 말한 청정의 세계에 들 수 있다는데…. 그날 나는 부처님의 손안에 앉아 어이없게도 수행자들을 걱정했다. 철없던 그때의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했는데도 자신의 참모습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각 진 마음이 언제쯤 저 둥글한 산등성이를 닮을지 가끔 내밀한 내 속내가 궁금해진다.

영천 은해사의 부속 암자이자 수행처로 알려진 운부암. 711년(성덕왕) 때 의상이 창건했다는 이야기와 809년(헌덕왕) 때 혜철이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천년이 넘도록 계절만 오고 갈 뿐, 암자는 조용히 그 자리에 부처님처럼 앉아 있다.

고승들은 수행의 자취를 남기고 떠나갔지만 암자는 여전히 산의 품에서 수행하라는 묵묵한 울림을 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위로와 희망을 얻어갔을까. 상서로운 구름이 머무는 절, 운부암은 중생들의 고뇌를 안고 이렇게 또 한 계절을 보낸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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