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탈대구 항공사에 ‘의리’ 외친 권영진 시장

19년 전인 지난 2000년 ‘삼성이 대구를 버렸다’는 대구시민들의 분노가 불꽃처럼 일었다. 삼성이 당시 성서공단에 있던 상용차 사업을 포기한 때문이다.

한순간 지역 경제가 휘청했다. 삼성 불매운동과 규탄집회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반삼성’ 분위기가 극에 달했다.

이에 앞서 1990년대 초반 삼성은 삼성자동차 입지로 대구가 아닌 부산을 선택해 대구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삼성은 자동차(승용차) 대신 규모가 작은 상용차(트럭)를 성서공단에 입주시켰다. 삼성은 자동차 사업을 한다는 명분으로 대구시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았지만 끝내 대구를 등졌다.

악화된 대구와 삼성의 관계는 2010년 대구상의가 중심이 돼 개최한 이병철 회장 탄신 100주년 행사를 계기로 겨우 회복되기 시작했다.

---“어려울 때 외면한 기업 똑똑히 기억해야”

파장의 규모는 다르지만 비슷한 성격의 일이 또 일어났다. 지난 1일 권영진 대구시장이 대구를 떠나려는 한 저가 항공사를 겨냥해 작심한 듯 쓴 소리를 뱉어냈다.

권 시장은 이날 직원 조회에서 “대구공항이 한창 활성화 될 때 뻔질나게 찾아와 취항에 협조해 달라던 항공사 중에서 한일관계가 악화돼 승객이 줄자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노선을 철수해 버리는 의리없는 기업들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는 대구에 발을 못붙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몰염치한 기업에 던지는 일갈이다.

이날 발언의 타깃은 에어부산이다. 에어부산은 그동안 대구공항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노선 9개 중 8개 노선을 철수했다. 오는 17일 후쿠오카 노선을 중단하면 대구취항 국제선은 타이베이 노선 1개만 남게 된다. 단물만 빨아먹고 발을 뺀다는 ‘먹튀논란’이 사실이 되고 말았다.

에어부산의 ‘탈대구’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에서 비롯됐다. 지역에서도 일본여행 자제운동이 불붙으면서 여행객이 급감했다. 일본행 여객기의 빈자리가 크게 늘어났다.

이런 와중에 인천공항 국제선 노선이 없었던 에어부산은 최근 노선 확보에 성공했다. 대구에 투입하던 항공기를 인천으로 돌리기 위해 대구를 등진 것이다. 대구보다 인천 취항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지난 2016년 에어부산이 대구에 취항한 뒤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했던 대구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에어부산은 일본 삿포로, 후쿠오카, 중국 싼야 노선 등에 취항하며 발생한 적자를 대구시로부터 보조받았다.

장삿속만 앞세우는 기업에 시민의 결기를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대구국제공항과 관련된 일이라면 시민 누구나 나서야 한다. 대구공항은 시민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권 시장이 이례적으로 에어부산을 강한 톤으로 규탄하고 나선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장 에어부산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향후 일본의 경제제재가 장기화될 경우 또 다른 항공사가 대구를 떠나려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선제적 대응을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시민통해 메시지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

기업의 경영논리는 간명하다. 가장 큰 목적은 이윤추구다. 기업활동을 통해 이윤을 내고 이를 재투자해 일자리를 창출한다. 세금을 내 궁극적으로 지역과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권시장의 ‘사이다 발언’은 시원하다. 정치인의 발언으로는 최고다. 하지만 자치단체장의 발언으로는 적합한가 의문이다. 떠나려 마음먹은 기업에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사전에 지역진출 기업들이 토착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살피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대구시가 공항 활성화라는 과제에 매몰돼 사후관리는 뒷전인 채 유치에만 올인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에어부산을 규탄하는 발언은 시민이나 시민단체에서 나와야 한다. 현황을 공개하면 시민들이 자연스레 나섰을 것이다. 시장의 입에서 ‘의리’라는 감성적인 단어가 나오는 것은 조금 생경스럽다.

대구는 기업유치를 지상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향후 지역에 진출한 기업들이 경영이 어려워져 빠져 나가려 할 때 지방정부에서 앞장서 규탄하면 누가 기업하러 오겠는가.

이번에는 특수한 사정이 있긴 했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반기업 정서는 시대정신에 맞지않고 지역발전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국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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