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2019수필대전 과메기 오브제

입선 박하성

수천수만의 연등이 묵언수행 중이다. 두 손을 합장하고 있는 모습이 홍련을 닮았다. 저들은 얼마 전 이승에서의 마지막 푸른 유영을 끝냈다. 바닷바람과 햇살이 잘 드는 곳을 골라 다비식을 치르기 전 의식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거침없이 어디에든 닿았던 족속이었다. 저들은 너른 초원의 전쟁터를 폭풍처럼 누비고 휩쓸던 유목 부족의 기마 전사들이었다. 푸른 지느러미로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사방팔방으로 대양을 내달리던 온전한 자유이자 절대자였다.

이제 저들은 안식에 들 것이다. 죄 없는 칼이 일찍이 머리를 잘라 번뇌를 끊고, 뼈를 발라 업을 끊어주었다. 창자를 도려내어 미혹함을 버렸으니, 이젠 넘나들어야 할 경계가 없다. 오로지 혹독한 수행을 거쳐 열반에 들 일만 남았다.

비린 생이 치러야 하는 의식이다. 살아서는 닿지 못했던 공중에 가부좌를 틀고 비릿하게 말라가는 수행에 들었다. 더욱 정진하라고 하늘법당 큰스님은 햇살 죽비로 등짝을 때린다. 수십 길 바다 속에서 보았을 때는 얼마나 눈부시고 아름답던 햇빛이었던가. 그 햇살이 이제는 죽비가 되어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어깨며 등짝에 가시처럼 내리 꽂힌다.

동해 찬바람은 속살을 아리게 후벼 판다. 더 비우라고 자꾸만 다그친다. 속내를 다 덜어냈는데 무엇을 또 비우라는 말인가. 남은 건 꾸덕꾸덕해지는 껍질과 알맞게 간이 밴 검붉은 속살뿐인데 또 비울 것이 있단 말인가. 질기디질긴 숨비소리조차 마지막으로 토해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비울 게 없을 것 같아도 비워지는 게 있다. 채 버리지 못한 욕심 찌꺼기가 꾸역꾸역 기름으로 흘러나온다. 백팔 번 얼었다가 백팔 번 녹으면 해탈의 경지에 드는가. 어는 것도 고통이지만 녹는 것도 사뭇 고통이다.

관목청어貫目靑魚라고 했다. 꼬챙이로 청어의 눈을 뚫고 꿰어 말렸다는 뜻이다. ‘목'이 ‘메기'가 되어 관메기가 되고, 관에서 ㄴ이 탈락해 과메기가 되었다고 한다.

청어가 많이 잡히지 않으면 꽁치를 사용한다. 제조법도 전통적인 방법과 달라졌으나, 동해안 구룡포의 과메기는 한국의 특산품이 된 지 오래다. 과메기의 계절 겨울이 오면 포항과 구룡포 일대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의식을 다 치르고 난 과메기를 공양으로 올린다. 사람들은 김, 파, 미역, 배추, 마늘 따위로 과메기를 치장하고 공양을 한다. 육신은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비린 생의 내력들은 뒷맛으로 남는다.

거칠 것 없는 온전한 자유가 저들의 속성이었다. 누구나 누리고 싶은 자유이다. 진정한 자유란 남에 의한 구속뿐 아니라, 자신이 자신을 속박해서도 안 된다. 다만, 자유를 누리되 분별없이 방만해선 안 되고, 자신을 놓아주되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도전하되 무모하지 말 것이다.

부단히 수행하고 비우는 것은 또 어떤가. 나는 지금까지 ‘나중에’란 생각이나 행동을 너무 많이 하며 살아왔다. 무슨 계획을 세우는 것도‘나중에’, 오늘 당장 해야 할 일도 ‘나중에’ 식이었다. 심지어 효도도 ‘나중에’, 좋은 일을 하는 것도 ‘나중에’였다.

하지만 그 ‘나중에’ 란 날은 결코 오지 않았다. 그것 대신 온 것은 오직 뼈아픈 후회뿐이었다. 나중에 해야지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내 책무를 미루어버리는 짓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이 단순해 보이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버렸다.

수행이라고 무슨 거창한 것이겠는가. 항상 바른 생각을 지니고,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제때 해야 할 옳은 일을 바르게 하는 것도 훌륭한 수행일 것이다. 바른 가치를 지향하는 참다운 삶이라면 거룩한 수행일 터이다.

자신을 비우는 것은 또 어떤가. 내 안에 산패(酸敗)되어 있는 묵은 기름 찌꺼기조차 버리려 하지 않는 탐욕을 경계하라고 머리와 뼈, 내장을 버린 저들은 몸으로 엄중하게 보여주고 있다.

역경과 난관도 견디고 극복하란다. 남을 짓밟고 딛고 서기 위한 승리가 아니라, 내 정당한 삶을 짓누르고 억압하는 고난을 정당하게 이겨내라는 것이다. 시련을 겪어야 진정한 삶에 가까워질 수 있고, 고난을 이겨낸 삶은 한층 빛날 것이다.

꽁치들이 날아오른다, 푸른 바다에서의 유영을 마치고 푸른 하늘로 비상한다. 한 생을 마치고, 동해에서 발원한 비린 목숨들이 저들의 육신을 가뭇없이 공양하고 간다. 비린 생을 살고도 속 깊이 잘 우러난 향기를 남기고 간다. 나도 향기를 남기고 가고 싶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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