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딸을 기다리며-고3 아이에게

딸을 기다리며-고3 아이에게/ 박철

늦은 밤이다/ 이 땅의 모든 어린 것들이 지쳐 있는 밤/ 너만 편히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지구상 어느 나라에 우리처럼/ 가난은 곧 불행이다, 라는 공식을 외우며/ 걸식하듯 밤하늘을 쳐다보는 바보들이 있을까/ (중략)/ 딸아 가여운 아이야/ 많은 이들이 옳다면 옳은 것이겠지/ 지지 말고 살아라/ 이민 가며 친구가 남긴 한 마디/ 악하게 살아야 오래 산다는 말도 되살아오는 밤/ 어서 돌아와 잠시라도 깊은 잠 마셔봐라 숨소리 예쁘게-/ 반쪽의 달이 외면하며 구름 뒤에 숨고/ 밤이 어둔 것조차 내 죄인양 송구스런 밤/ 너의 행복을 쌓으며 몇 자 쓴다 아이야

- 웹진『시인광장』200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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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불면의 날과 고통의 시간들을 감내했을 고3수험생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자식들 바라지한다고 애썼을 학부모들, 시험을 치루는 당사자의 마음고생도 그렇지만 그들의 비위 맞추랴 공부한답시고 부리는 짜증 다 받아주랴 그들 못지않게 힘겹고 가슴 조아렸던 지난 시간이었으리라. ‘정시’니 ‘수시’니 ‘수능’이니 ‘학종’이니 말도 탈도 많은 가운데 일생일대 결전의 날이 오고야 말았다. 오랜 기간 준비했던 실력을 단 한 번의 평가에 쏟아내야 하는 날이니 수험생과 학부모 모두 초조와 긴장의 낯을 숨길 수 없으리라.

해마다 되풀이되는 입시지옥에 단판 승부로 자신의 인생이 결정되는 이 행태는 가혹하고 부조리하기 그지없지만, 그들을 구렁텅이에서 해방시킬 뾰족한 묘책은 없었다. 다양한 선발기준을 마련했다지만 여전히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몇 시간의 결과로 평생 갑의 위치에서 순탄한 생을 살아갈지, 험난한 삶을 예고할지가 판가름 나는 가혹하고도 모순적 상황임에도 속수무책이다. 그런 현실에서 자식들을 안쓰러워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옳다면 옳은 것이겠지’ ‘지지 말고 살아라’며 등을 떼민다. ‘가난은 곧 불행’이라며 모든 가치의 척도로 경제능력을 꼽는 현실이 변하지 않는 한 이 왜곡된 교육의 부담을 벗기란 무망해 보인다.

수능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도 적성에 맞는 일을 할 기회가 주어지고, 설령 가난하게 살더라도 자기 일에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면 주위의 편견 없이 얼마든지 결혼해서 잘 살 수 있어야 교육제도 개선도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런 가치관의 폭넓은 사회적 수용이 선행되지 않고는 특목고 폐지, 선행학습금지, 심지어 서울대가 없어진다고 해도 대학서열화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따라서 입시경쟁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학력 간 지나친 신분격차와 임금격차를 해소하지 않고는 사교육이 줄지 않으며 교육비 부담도 경감되지 않을 것이다.

당국에서는 해마다 학교교육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풀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본주의를 지금껏 존재케 하고 굳건히 떠받치고 있는 힘은 경쟁을 통해 앞서는 자가 뒤처지는 자보다 부와 명예, 안락함 등의 아이템을 더 획득할 수 있는 사회구조에 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부모나 자녀들이 자신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모든 이가 열망하지만 ‘막상 부자로 사는 이들은 열의 둘’이고, 그들조차 마냥 행복에 겨운지는 알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불편한 진실이 아닌가. 수능이 각자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방도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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