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풀/ 나병춘



풀인가 꽃인가/ 한참 들여다봐도/ 고개만 갸우뚱/ 꼬리만 살래살래// 삶이 그러코롬 힘겨웠단 말이시?/ 그렇군 그래그래/ 서리에게도/ 번개 폭풍 장대비에게도/ 그저 그렇게/ 끄덕끄덕 하라는 말인갑제?// 이제야 그걸 알아채다니/ 어릴 적부텀 내내/ 요로코롬 일러주었는데도/ 이 바보 청맹과니가/ 알아보지 못해 미안코나// 그래도 여전히 시큰둥/ 먼 하늘 먼 빛 보라꼬있구나/ 이제는 멀리 멀리/ 노을도 마음자리에 턱/ 올려놓으란 말이제// 낮달도 어둠도/ 지그시 눈여겨보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싱긋이 껴안으며/ 웃어보란 말이제 응?



- 계간《불교문예》 201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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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풀은 우리 땅 어디서나 자라는 흔한 식물이며 풀씨가 가닿은 곳이라면 담벼락 금간 틈 사이에서도 발길 없는 외딴 폐가의 주저앉은 변소 옆에서도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후미진 개울가에서도 볼 수 있다. 가느다란 줄기 꼿꼿이 세워 이삭을 달고서 저 혼자 흔들린다. 그 생김새가 개 꼬랑지를 닮았다 해서 개꼬리풀이라고도 불린다. 꽃이 어디 있나 싶지만 이삭에 낱낱의 꽃들이 촘촘히 모여서 핀다.

어린 시절 서로 목이나 얼굴을 간질거리며 장난치며 놀았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풀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하였다. 강아지풀은 놀이기구가 신통찮았던 시절의 중요한 놀이도구였다. 이런 동심을 추억하며 강아지풀에 천착하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다. 그것도 채색화가 아닌 색의 강약과 억양, 굵기만으로 그림을 완성시키는 수묵화다. 수묵화는 사물의 형상뿐만 아니라 정신을 함께 표현한다. 극도의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이라 잡념이 있어서도 안 되고 수행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단다.

뒤늦게 그림에 입문한 나순단 화가는 “하얀 종이에 먹이 스미는 게 꼭 나 자신을 찾는 느낌이 들었다” 우연히 산책하다가 보도블록 틈에 피어있는 강아지풀의 강인함을 발견했던 것이 일관된 소재로 삼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한낱 ‘잡초’에 불과했던 풀 한 포기의 역동적인 생명력에 새삼 경이로움을 느꼈던 것이다. 아마 강아지풀에서 ‘민초’를 보았던 것 같다. ‘서리에게도 번개 폭풍 장대비에게도’ 강인하게 버티며 ‘그저 그렇게 끄덕끄덕’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강아지풀에게 감동하고 그 생동감을 화폭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그림 속 강아지풀은 어쩌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추구하는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제가 강아지풀을 보고 느꼈던 건 위로였거든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기쁨이니 누구나 희망을 갖고 살아가면 좋겠어요.” 한국화 기법으로 강아지풀에 집중한 이는 나순단이 유일하다. 그는 대구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몇 차례의 전시회를 가졌고 얼마 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스카프(scaf) 아트 페어’에 초대되었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수묵담채의 추상성을 통한 강아지풀의 이미지 형상화가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잘 어우러져있는 것 같았다. 강아지풀과 교감하면서 느껴지는 내면의 파장이 그림에서도 느껴진다. 앞이 안보이면 하늘을 보라고 했던가. ‘먼 하늘 먼 빛’ 바라보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쿤데라의 동명 소설 이름에서)’도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늦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니 잠시 눈은 맑아지고 마음은 깊어지는 것 같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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