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독재자 ‘빅 마더’

발행일 2019-11-19 09:33:4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부드러운 독재자 ‘빅 마더’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이틀 전, 네이버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라인·야후재팬 간의 경영 통합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회사의 경영통합은 한국과 일본 대표 인터넷 기업이 손을 잡는다는 의미 외에 메신저에 검색까지 갖춘 글로벌 IT공룡기업의 탄생이라는 의미도 있다.

실제 라인 이용자 8200만 명과 야후재팬 이용자 5000만 명을 더하면 1억3200만 명이라는 거대 인터넷 생태계가 조성되는 셈이다. 이를 바탕으로 검색서비스 뿐 아니라 통신, 금융, AI에 이르는 사업을 펼쳐나가면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전 세계 디지털 플랫폼 시장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의 인터넷 업계는 GAFA와 BATH가 주도하고 있다. GAFA는 구글(Google)과 아마존(Amazon), 페이스북(Facebook), 애플(Apple)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다. 모두 미국기업으로 거의 10여년 만에 디지털세계를 장악했다. 반면 BATH는 중국의 4대 IT 기업인 바이두(Baidu)와 알리바바(Alibaba), 텐센트(Tencent), 화웨이(Huawei)를 지칭한다. 이들 미국과 중국의 8개 회사가 전 세계 디지털 플랫폼 시장을 장악하며 전방위 대결을 펼치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은 실은 미중 간의 플랫폼 전쟁이라는 말도 있다. 이들 기업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미 ‘빅 브라더’로 성장했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한 때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온 용어인 ‘빅 브라더’가 모든 분야에서 회자된 적이 있었다. 빅 브라더는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고 인간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는 절대권력을 지칭하는 말이다. 2019년 현재는 GAFA와 BATH가 현실 속의 빅브라더인 셈이다.

최근에는 ‘빅 파더’라는 말이 생겨났다. ‘빅 브라더’보다 크고 강한 정부를 의미한다. GAFA와 BATH 같은 거대기업들조차 두려워하는 정부다. 다각도로 사업 영역을 키워나가야 하는 이들 디지털 기업으로서는 자기들 입김대로 통제할 수 없는 현재의 국가형태를 부담스러워 할 수밖에 없다.

‘빅 파더’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거대 빅 데이터 디지털 기업을 뜻하는 ‘빅 마더’이다. ‘빅 마더’는 개개인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우리를 지배해나간다. 마르크 뒤갱과 그리스토프 라베는 그들의 저서 ‘빅데이터 소사이어티’에서 “빅 마더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서 통제하는 부드러운 독재를 펼친다”고 했다.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의 욕구를 미리 간파해서 다 채워줄 정도로 교묘하게 지배하는 어머니인 것이다.

페이스북의 타깃광고가 초보단계의 ‘빅 마더’이다. 페이스북은 개인이 페이스북을 통해 방문한 사이트 혹은 물품구매 정보를 타깃광고에 활용해왔다. 실제로 며칠 전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는 바람에 겨울옷이 필요해 검색해서 살펴본 적이 있었다. 이후 페이스북을 이용할 때마다 이 제품이 광고로 보여지곤 했다.

이런 형태가 좀 더 진행되면 ‘빅 마더’가 개개인의 취향 뿐 아니라 생각마저 조종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다. ‘빅 마더’는 일단 사용자의 모든 정보를 수집해 놓는다. 성별, 나이 등 기본적인 정보부터 소소한 의류 구매 취향, 정치적 성향, 평소 즐겨찾는 인터넷사이트까지 빅데이터로 저장해둔다. 이 모든 빅데이터를 분석하면 내가 오늘 점심은 무얼 먹을지, 내일 오후 시간에는 어느 장소에 있을지까지를 정확하게 예측해 낸다고 한다. 이미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나의 디지털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세상이다.

무서운 건 수집해놓은 정보를 바탕으로 개개인의 생각의 틀까지 빅 데이터 기업들이 정해줄 수 있다는 우려다. 이미 국내에서도 포털업체의 검색어 조작을 통해 여론조작을 한다는 의심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빅 마더가 자상하게 제공하는 맞춤형 정보에 의존하다보면 결국은 다른 정보는 철저하게 무시되고 결국 정해준 틀 안에서만 생각하는 위험이 있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묘사한 ‘빅 브라더 사회’가 우리들의 행동을 통제했다면 35년이 지난 현재의 ‘빅 마더 사회’는 우리의 뇌를 지배하려 하고 있다. 단순히 유용하다고만 할 수 없는 위험한 디지털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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