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해결사는 국민이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단군 이래 최대의 인사 참사에도 불구하고 제일 야당인 한국당의 지지율은 오히려 하락세다. 지지율 하락이 다시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형국이다. 이 상황에서 패스트트랙에 실린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한국당이 홀로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설상가상 몸싸움으로 고발당한 육십여 명의 의원들은 검찰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그 와중에 총선불출마를 선언한 중진의원의 비판은 아프다. 수명이 다한 좀비정당을 즉각 해체하라는 극단적인 주장에 동조하긴 힘들지만 흘려들을 수 없는 부분은 분명 있다. 개혁적인 범보수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원론에 대놓고 반박하는 사람은 없으나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다.

반면 여당은 표를 의식한 설익은 정책을 무차별적으로 내놓고 있다. 모병제와 청년신도시는 청년층을 겨냥한 노골적인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모병제는 시기상조고 청년신도시엔 철없는 치기마저 엿보인다. 그렇거나 말거나 청년들에 대한 관심표명은 확실히 한 셈이다. 인센티브가 다양한 여권은 총선불출마도 여유롭고 영입할 인재풀도 차고 넘친다. 인적쇄신이 활발하다. 칼자루를 쥔 쪽답다.

야권은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사면초가의 항우 신세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다. 흔히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극약처방도 한 방법이다. 극약을 복용하면 죽겠지만 극미량을 처방하면 중병도 치유된다. 지금은 호르메시스를 시도해볼 만한 상황이다. 국민은 자신들이 뽑은 의원에게서 신뢰를 거둔 지 오래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의원은 이미 대표가 아니다. 신뢰를 회복하려 몸부림을 치지만 백약이 무효다. 이쯤 되면 기존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주권자에게 재신임을 물어볼 필요가 있다. 후진을 위하여 다음 총선에 불출마하거나 의원직을 사퇴하는 일이다. 비록 임기가 얼마 남지 않긴 하지만 의원직사퇴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사퇴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에 대한 부담은 거의 없다. 한번 미운털이 박히면 무슨 짓을 해도 밉상이다. 지금 상황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다. 하는 짓들이 무조건 다 밉게 보이기 때문이다.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 성난 국민의 마음을 돌려놓는 길은 화끈한 극단적 처방 이외에는 묘수가 거의 없다. 충격요법이다.

약한 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자기 목숨이듯이 힘없는 소수야당의 최후 투쟁수단은 의원직 사퇴다. 정말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면 반대하는 의원 전원이 의원직을 버리는 극약처방이 최후방책이 될 수 있다. 막다른 골목에선 쥐가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일백 명 이상이 일시에 총사퇴하면 국회의원 200명 이상이라는 헌법 규정을 지킬 수 없다. 국회를 해산하고 60일 이내에 재구성해야 한다. 국민의 신임을 받은 국회는 어떤 난관도 돌파할 힘이 생긴다. 국회해산 여부에 대해서 다툼이 있다하더라도 국회를 무력화시킴으로써 독단적인 패스트트랙 처리를 막을 수 있다. 삼분의 일 이상의 구성원이 총사퇴한 상황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무리하게 처리한다면 정국은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상황이 총선과 대선에서 여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진 않을 것이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무리하게 제명시킨 사건이 당시 정국을 파국으로 몰아넣은 기폭제였다. 이 사건이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단초가 되었다. 의원직 총사퇴가 몰고 올 파장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이 극약처방은 비단 보수정당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당도 오십보백보다. 신뢰를 잃은 의원은 여든 야든 진정한 대표라 할 수 없다. 전 의원이 총사퇴하고 총선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래 국회해산은 내각책임제하에서 내각불신임에 대한 대응수단이지만 작금과 같은 혼란한 정국에선 이 제도의 숨은 뜻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 신임을 물어 정쟁을 해결한다는 국회해산의 원래 취지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 임기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뢰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의원은 언제든지 스스로 의원직을 사퇴하고 재신임을 묻는 것이 떳떳하다. 내년 4월 15일을 기다려야 할 필연성은 없다. 전 의원이 총사퇴하고 60일 이내에 총선을 실시하면 사회적 갈등을 조기에 수습할 수 있다. 최후의 해결사는 국민이다. ‘사즉생’이라 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의원직을 버리면 다시 살 길이 열린다. 전태일은 엄혹한 여건에서 몸을 불살라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얻고자 한다면 책임을 통감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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