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보수’, 무엇이 문제인가

발행일 2019-11-25 15:23:4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위기의 보수’, 무엇이 문제인가

홍덕률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지역의 한 방송사가 최근, 보수 일색의 대구를 집중 조명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보수의 섬’, 2부작이었다. 진보의 도시였던 대구가 보수화된 과정과 그것이 지금 대구에 미치는 영향을 반성적으로 고찰한 기획물이었다.

반응이 뜨거웠다. 며칠 사이 유튜브 조회 수가 12만을 넘었고, 응원 댓글도 쏟아졌다.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실은 ‘대구의 보수’ 이전에 ‘한국의 보수’가 심각한 위기다. 수년째 지리멸렬인데다 아직도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합리적 보수 성향의 시민들까지 등을 돌리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첫째,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진영의 책임있는 그 누구도 국민과 역사 앞에 사죄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국정을 농단한 몇몇 권력자만 법의 심판을 받았을 뿐이다. 보수진영 차원의 성찰과 혁신도 없었다. 각자가 혹은 분파별로 살아남기 위해 뛰었을 뿐이다. 보수정당의 이념과 정치문화는 대통령 탄핵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둘째, 대표적인 것이 종북몰이와 좌파타도 구호다. 많은 국민이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고 있는데 보수정당들은 여전히 냉전적 사고와 대결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지금도 상대를 빨갱이, 주사파, 친북좌파로 낙인찍어 상황을 반전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 효과는 전같지 않다. 오히려 자신을 역사의 미아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셋째, 한국 현대사에 대한 편향된 인식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제 식민사관, 친미반공 세계관, 재벌중심 경제관, 기득권 중심의 권위주의적 질서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신격화한다. 삼청교육대를 미화하고 위안부를 매춘부였다고 모욕하기까지 한다. 한·일 경제전쟁 국면에서도 줄곧 일본을 편들었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보수는 ‘애국’이라는 자산마저 잃게 되었다. 보수가 아니라 극우, 매국일 뿐이라는 비판을 자초한 이유기도 했다.

넷째,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들도 버려졌다. ‘자유와 인권’이 대표적인 예다.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버리고 지도자가 솔선하는 것이 보수진영의 미덕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과거의 보수정권들은 자유와 인권을 심각하게 유린했으며, 최근의 보수정권 하에서는 어렵게 쟁취한 자유와 인권이 다시 곤두박질쳤다.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희생은 진보진영의 몫으로 넘어갔고 자유와 인권은 진보진영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다섯째, ‘안정감’도 원래 보수주의의 강점이다. 그것은 법과 규범과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보수주의 세계관에서 나온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준법과 질서로부터도 너무 멀어져 있다. 한때는 차떼기로 상징되는 정경유착과 부패 범죄로 심하게 비판받았지만, 최근의 패스트트랙 충돌을 거치면서 폭력 이미지까지 떠안았다. ‘법치’와 ‘안정감’도 한국 보수에게는 더 이상 강점도 자랑도 아니게 된 것이다.

여섯째, 보수진영의 또다른 미덕은 ‘품격’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진영 지도자들과 강성 지지자들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은 너무 거칠다. 품격이 아니라 증오와 저질 폭언이 한국 보수의 트레이드마크로 굳어졌다. 막말정당이라는 별명까지 갖게 되었으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시대와 조응하는 역사인식도 부재하고, ‘애국’ 이미지도 잃었으며, 자유와 인권이라는 핵심가치마저 진보진영에게 빼앗겼고, 법치와 품격과 안정감마저 자랑할 수 없게 되었으니, 무엇으로 국민의 지지를 구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유일하게 기댈 것은 상대가 실패하는 것이다. 상대진영에 대한 무조건 반대와 정국 파행이야말로 고유의 가치와 매력을 잃어버린 보수, 성찰과 혁신을 포기한 보수진영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된 것이다.

물론 보수진영 안에서 자성과 혁신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늘 변방으로 밀려났다. ‘배신’ 혹은 ‘내부총질’이라고 매도될 뿐이었다. ‘대구 보수’가 주목받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한국 보수’의 혁신을 가로막는 중심에 ‘대구 보수’가 있다는 지적이다. 보수의 세가 강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지향하는 세계관과 문화가 구시대적이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보수를 살리는 심장’이 아닌, ‘퇴행보수의 진지’로 역할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방송에서 던진 묵직한 질문이 주목받는 이유다. ‘대구 보수’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보수’의 혁신, 그를 위한 ‘보수의 섬, 대구’의 성찰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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