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반

천 년을 한결같이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진리 체득한 이, 모두 ‘붓다’ 사찰엔 다양한 부처 있어 손모양으로 제 이름 말하네

<7> 천 년을 한결같이 황상동 마애여래입상

사찰엔 많은 부처가 있다. 문수사 극락보전에 모셔진 아미타불.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사찰에는 많은 부처가 있다.

석가모니불 외에 미륵불이니, 아미타불이니, 약사여래불이니, 아미타불이니 그 수를 세고 외우기도 어려울 정도다.

왜 이렇게 많은 부처가 존재할까. 불교 학자들은 불교가 ‘진리의 절대성’을 추구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교나 도가, 희랍철학 등과 같이 노력해서 진리를 체득한 이들, 즉 진리와 하나가 된 인간을 ‘성인’이라고 하는데 불교에서는 이들을 붓다 즉 깨달은 사람이라고 한다.

진리가 곧 석가모니 부처가 아니라는 말로 이 때문에 다양한 부처가 있을 수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부처

현재를 관장하는 부처는 석가모니불이다.

하지만 인간세계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다. 이를 관장하는 부처가 연등불(과거), 미륵불(미래)이다. 시간적 차이를 둔 이들을 합쳐 삼세불이라고 한다.

또 위치상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약사여래불, 서쪽에는 아미타불이 있는데 이를 삼계불이라고 부른다.

공간상 우주에는 지구 외에 다른 많은 세계가 있다. 이곳에도 진리를 체득한 이들이 있으며 이들을 동서남북, 상하 등 방위로 표현해 10방의 부처, 즉 시방불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사찰엔 많은 부처를 모시고 있다. 통상적으로 법당 가운데 부처를 앉히고 양쪽에 두 보살을 두는 협시가 일반적이다. 일종의 비서 역할이다.

대웅전 석가모니불 곁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한다. 극락전 아미타불 옆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뜻을 받든다.

금오산 약사암처럼 약사여래불 곁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앉힌다.

이와는 달리 보살이 주존이 될 경우에는 보살보다 낮은 협시가 함께 모셔진다. 관음전의 관세음보살 곁에는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이, 지장전 지장보살 곁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앉아 있다.

◆불상은 손으로 말한다

불상을 자세히 보면 손 모양이 모두 다르다. 불상의 이름은 이를 통해 구별할 수 있다. 이를 ‘수인’이라고 한다.

처음 인도 불교는 인도문화를 중심으로 오른손을 강조해 오른손이 주가 됐지만 불교가 중국으로 옮겨가면서 왼손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변화했다.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우리나라는 오른손과 왼손이 혼합해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 각 사찰에 모셔져 있는 불상 중 비로자나불의 경우 인도문화와 중국문화가 혼재된 보습을 보인다.

앞서 불상의 이름을 수인으로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석가모니불은 항마촉지인, 아미타불은 구품인, 비로자나불은 지권인 등 특정 수인을 사용한다.

항마촉지인은 오른손으로 땅을 짚어 마왕을 항복시킨다는 뜻으로 석굴암의 석가모니불이 이 모양을 하고 있다.

약사여래불은 오른손으로 땅을 짚은 상태에서 왼손은 약기인이 된다.(약그릇을 들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손의 방향이 바뀐 불상도 여럿 있다)

극락이라는 이상세계를 주관하다는 아미타불은 하품중생인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 동그랗게 만드는 손 모양으로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돈 내놓아라’라고 하는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비로자나불은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든 뒤 왼손의 검지를 세워 말아쥐는 모습이다.

◆부처와 보살

보통 불상은 의복 외에는 아무런 장신구를 하지 않았다. 다만 머리 모양은 상투의 모습이 종교적으로 변화한 육계(정수리가 두둑하게 솟아오른 모습으로 최고의 지혜를 나타냄)와 나발(머리카락이 소라고둥처럼 틀어 말린 모양)로 특이하다.

불상은 약사여래와 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물건을 손에 쥐지 않는다. 수행자의 무소유를 강조한 것이다.

이에 비해 보살상은 출가자가 아닌 재가의 국왕을 모델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보살상에는 왕관(보관)과 영락이라고 하는 다양한 길이의 구슬장식과 장신구를 표현한다.

귀고리와 팔찌, 발 찌를 한 보살도 볼 수 있다.

보살상은 갖고 있는 물건으로 구별한다. 문수보살은 칼을 쥐고 있고 보현보살은 폐업경(불교경전)을 들고 있거나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다.

관세음보살은 군지라는 정병과 버드나무 가지를, 대세지보살은 폐업경이나 아무것도 소지하지 않는다.

월광보살과 일광보살은 태양과 달을 상징하는 보살로 이마 위에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원과 달을 상징하는 하얀 원이 묘사된다.

잘 알다시피 지장보살은 육환장과 투명한 보주를 들고 있다. 금오산 법성사 마당에 가면 큰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 상을 만날 수 있다.

보물 제1122호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
보물 제490호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 명칭을 혼돈해 사용하고 있으나 2010년 이전엔 금오산 마애보살입상으로 불리다 2010년 문화재청이 보살이 아닌 여래의 모습이라며 명칭을 금오산 마애여래입상으로 변경했다.
구미에는 규모가 아주 큰 불상 2구가 거대한 암벽에 조각돼 있다.

하나는 보물 제1122호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이고 또 하나는 보물 제490호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이다.

금오산 마애여래입상은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금오산 마애보살입상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형태 등을 종합해 본 결과 보살의 모습이 아닌 부처의 모습이라고 판단해 문화재청이 2010년 마애여래입상이라고 명칭을 변경했다.

이처럼 천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 윤곽은 흐릿해지고 일부는 손상돼 당초 만든이의 생각과는 다른 이름이 붙는 경우도 생겨났다.

구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의 오래된 사진. 마을 사람들이 마애여래입상 앞에 모여있다.(자료사진)
◆황상동 마애여래입상

인동에서 선산으로 가는 길목 황상동 속칭 돌고개(석현)라는 고갯길 왼쪽, 산과 공장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산을 배경으로 덩그러니 선 큰 바위가 있다.

신라의 영원한 통일을 기원하며 사방정토, 극락세계가 이 땅에 성취하길 위해 만든 석불상으로 보물 제1122호인 구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이다.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돌부처는 높이가 7.2m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바위의 면이 고르지 못하고 곳곳에 균열과 부서짐이 심하지만 보존상태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보물 제1122호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
보물 제1122호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옆 금강선원.
인근에는 금강선원이라는 절과 석불상 정리 괴장에서 나온 작은 파편들이 있어 예전 이곳에 절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마여여래입상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육계가 있고 잘 정제된 듯한 얼굴의 이목구비 중 눈길을 끄는 것은 턱 끝까지 내려온 큰 귀다.

대체로 근엄하면서도 자비스러운 인상의 이 불상은 손을 가슴까지 올리고 있다. 왼손은 바닥이 안을 향하게 하고, 오른손은 밖을 향하게 해 설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수인의 모양으로 보아 구품인, 즉 아미타여래에 가깝다.

이에 비해 금오산 마애여래입상은 암벽 모서리에 조각돼 있다. 여래상의 중심선이 모서리여서 양쪽 암벽에다 조각된 특이한 구도다.

얼굴은 갸름하고 풍만하며 눈, 코, 입 등도 원만 상으로 처리됐다. 귀는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처첨 어깨까지 내려오며 목의 삼도는 명확하지만 목이 짧아 가슴까지 내려오는 형식적이다.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이 응시하고 있는 방향은 아마도 경주인 듯하다. 신라시대와 통일신라 때 제작된 대부분의 마애불상이 수도인 경주로 향하도록 만들어졌다는 학자들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물론 금오산 해발 800m에 있는 금오산 마애여래입상도 큰 바위 모서리를 활용해 같은 방향을 응시하도록 만들었다.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에는 구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삼국시대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당나라에서 파견된 한신이라는 장군이 어느 전쟁터에서 백제군에게 포위됐다.

그런데 꿈에 보살이 희모시자(중국 항주의 승려회통에 기록, 아미타불을 말함)로 변신하고 나타나 도망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에 한신 장군은 보살이 알려준 대로 작전을 수행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신은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갔지만 생명의 은인이었던 희모시자, 즉 아미타불의 얼굴을 잊을 수 없어 황상동 이곳 암석에 희모시자의 모습을 조각했다고 한다.

현재 균열에 따라 보호각을 씌워 둔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은 더 이상의 균열을 방지하고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정밀안전진단과 데이터 분석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이나, 금오산 마애여래입상과 같은 석불상은 절벽이나 바위의 면을 조각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동할 수 없다.

대부분 조성될 때 그 모습, 그 위치에 있어 지역적 특성이나 문화의 전파 경로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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