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체육. 언뜻 생각하기에 상관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두 분야지만 묘하게도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체육과 정치는 관련성이 무척 높았던 게 사실이다. 최상위 체육단체인 대한체육회나 산하 종목 단체의 경우 현역 정치인이나 정치인 출신이 회장직을 맡은 경우가 적지 않았고 지방 체육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시,도 체육회와 시,군,구 체육회는 선출직 자치단체장이 회장을 겸직해 왔다.

물론 정치인이라고 체육계에 들어오지 말란 법도 없고 또 그들이 지금까지 체육 발전에 기여해 온 공로가 적지 않았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가 그동안 체육에 관여한 과정을 보면 체육계가 자생력을 갖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정치가 부담이자 걸림돌이 됐다는 비판에서 또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탈정치화 요구가 커지고 있는 체육계에서 내년 1월16일 민간 체육회장 체제가 출범한다. 1995년 지방자치제 본격 시행, 2016년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통합 이래 처음으로 민선 회장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다.

체육과 정치, 두 분야가 밀착하게 된 데는 물론 서로 간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쪽에서는 수많은 경기 단체 또는 연맹 등이 속한 체육계의 거대 네트워크를 그냥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체육 쪽에서는 정치인들의 막강한 힘, 즉 막후 영향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수많은 행사와 대회를 치르고 거대 조직을 관리, 운영해야 하는 체육계로서는 무엇보다 예산 확보 측면에서 정치권이 효과적인 통로가 될 수 있었다. 사실 이건 체육 분야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통용되는 한국적 현실이기도 하다.

또 많은 사람이 관련된 분야인 만큼 체육계에는 잡음과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권력기관에 말발(?)이 통할 수 있는 유력 정치인을 내세워 효과적인 방패막이 역할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이 같은 필요성이 결국 체육과 정치를 오랜 시간 한데 묶어 두었고, 역설적으로 이는 체육계 내부에서 탈정치화 요구가 끊이지 않고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2016년 3월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되면서 체육계의 탈정치화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엘리트 선수들이 소속된 대한체육회와 달리, 동호회 위주의 국민생활체육회는 참여 인원 면에서 사실상 국내 최대 규모라 할 만큼 방대한 조직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근래 삶의 질이 중요하게 생각되면서 각종 동호회에는 참여 인원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결국 시대흐름, 즉 국민 생활패턴의 변화가 체육 조직의 변화를 가져왔고, 또 이는 탈정치화의 출발점이 될 민간 체육회장 시대를 열게 한 것이다.

◆ 대구, 경북 민간 체육회장

대구시체육회는 11월20일 선거관리위원회를 열고 민간 체육회장 선거 일정을 확정했다. 2020년 1월 4~~5일 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6~14일 공식 선거운동, 그리고 15일 오전 9시~오후 6시 투표(전자투표 방식)를 한 뒤 이날 오후 7시부터 개표를 진행한다. 대구시체육회장 선거에는 일반인의 후보자 등록이 가능하며, 후보자는 기탁금 5천만 원을 내야 한다.

경북도체육회도 11월19일 민간 회장 선거 일정을 확정했다. 2020년 1월 2~3일 후보자 등록, 4일~12일 선거운동에 이어 13일 오전 10시 후보자 소견 발표 직후 투표를 해 같은 날 오후 6시부터 개표를 진행한다.

이와 함께 대구 8개 구,군 체육회와 경북 23개 시,군 체육회도 2020년 1월 15일까지 민간 체육회장을 선출한다. 시,군,구 민간 체육회장 선거는 상급 단체인 대구시체육회와 경북도체육회의 개정 규약을 준용, 지역 실정에 맞게 변경해 치러진다.

한편, 대한체육회는 9월2일 이사회를 열고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 체육회에 민간 회장을 선출하도록 하는 규정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전국 17개 광역 시,도와 228개 시,군,구에서는 2020년 1월15일까지 민간 체육회장 선거를 해야 한다. 첫 민간 체육회장 임기는 2020년 1월16일부터 2023년 1월까지 3년이다.

◆ 첫 민간 체육회장 선출 방식은

민간 체육회장은 대의원 확대기구가 선거인단이 돼 투표로 선출한다. 대한체육회 변경 규정에 따르면 대의원 확대기구는 각 지자체의 체육회 총회를 구성하는 기존 대의원에다 지역, 종목 등 산하 조직의 대의원을 추가해 구성하게 된다. 또 이 대의원 확대기구는 지자체 규모에 따라 선거인단 하한선을 두게 된다.

인구 5만 명 미만 시군구는 50명 이상, 인구 5만~10만 명 미만은 100명 이상, 10만~30만 명 미만은 150명 이상, 30만~200만 명 미만은 200명 이상, 200만~500만 명 미만은 400명 이상으로 선거인단을 꾸려야 한다. 따라서 경북체육회와 대구체육회의 경우 400명 이상의 선거인단 구성 요건을 맞춰야 한다.

경북체육회는 11월4일 임시대의원총회에서 규약을 개정하고 23개 시,군 체육회장과 56개 종목단체 회장을 기본 대의원으로 하고 시,군,구 대의원 300명 이상을 추가해 선거인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대구체육회 역시 선거인단 구성과 관련해 53개 종목단체 회장과 8개 구,군 단체장을 더한 기본 대의원 61명 외에 추가 대의원을 더해 400여 명의 선거인단을 꾸린다.

◆민선 회장 체제 과제는

첫 민간 체육회장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체육 현장에서는 우려와 기대가 엇갈리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체육 예산 확보 문제다. 지금까지는 자치단체장이 체육회장을 겸직하면서 지자체에서 나오는 예산을 확보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민간 회장 체제가 되면 과거와 달리 지자체와의 예산과 업무 협조 등에 있어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현장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또 체육계 안팎에서 그동안 탈정치화 요구는 계속 있었지만, 실제 민간 회장 체제가 출범하게 되면 과연 과거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나 체육계의 홀로서기가 가능할까를 걱정하는 소리도 있다.

체육계가 엘리트 선수 육성과 국민 생활체육 지원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되찾으려면 이번 기회에 정치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을 체육인들 스스로가 입증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거 외풍에 무방비로 노출됐던 탓이 컸겠지만 학맥, 인맥으로 연결된 파벌 다툼과 조직 내 제사람 심기 관행을 싹 끊어내야 할 것이다.

이는 물론 체육인들의 노력이 기본이 돼야겠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지자체는 예산 가지고 체육 단체를 길들이려는 행태를 그만두어야 할 것이고, 정치인들은 체육 조직을 선거 때 이용 가능한 관변 단체쯤으로 생각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특히 지원금 얼마 내놓은 보상(?)으로 체육 단체 감투를 쓰고, 이를 정계에 입문하는 발판으로 삼으려는 일부 인사들에 대해서는 체육계가 앞장서서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여러 우려 속에서도 그러나 체육 현장에서는 민간 회장 체제에 대한 기대가 크다. 겸직 체육회장인 자치단체장의 경우 많은 업무와 바쁜 일정, 공직선거법 등 여러 제약으로 인해 체육 지원 활동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민간 체육회장은 의지가 있고, 경제적 여력만 있다면 지원 활동을 다양하고 폭넓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할 것이란 게 현장 체육인들의 기대이다.

내년 1월 민간 체육회장 체제 출범으로, 이제 체육의 탈정치화와 홀로서기를 위한 형식적 첫걸음은 일단 내딛게 됐다. 남은 과제는 체육인들이 그 내용을 알차게 채워가는 일이 될 것이다.

박준우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 메인사진-내년 1월16일 전국 자치단체는 민간,민선 체육회장 체제로 새 출발 한다. 1995년 지방자치제, 2016년 엘리트·생활 체육 통합 이래 첫 민선 회장 시대를 맞게 된 체육계는 또한 탈정치화와 홀로서기라는 과제도 동시에 안게 됐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 참석해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연합뉴스
▲ 메인사진-내년 1월16일 전국 자치단체는 민간,민선 체육회장 체제로 새 출발 한다. 1995년 지방자치제, 2016년 엘리트·생활 체육 통합 이래 첫 민선 회장 시대를 맞게 된 체육계는 또한 탈정치화와 홀로서기라는 과제도 동시에 안게 됐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 참석해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연합뉴스


▲ 서브사진1-엘리트 선수들의 축제로 매년 개최되는 전국체육대회의 개회식. 연합뉴스
▲ 서브사진1-엘리트 선수들의 축제로 매년 개최되는 전국체육대회의 개회식. 연합뉴스
▲ 서브사진2-건강을 챙기면서 재미도 느낄 수 있는 동호인 자전거대회는 매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연합뉴스
▲ 서브사진2-건강을 챙기면서 재미도 느낄 수 있는 동호인 자전거대회는 매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연합뉴스
▲ 서브사진3-경제 수준 향상으로 다양한 생활체육 활동에 참여하는 국민 수가 크게 늘고 있다.연합뉴스
▲ 서브사진3-경제 수준 향상으로 다양한 생활체육 활동에 참여하는 국민 수가 크게 늘고 있다.연합뉴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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