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행운이기를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대관령에 하얗게 눈이 내려 순백으로 만들어 놓은 풍경 사진을 본다. 앉아서도 저만치 달려가는 마음을 겨우 붙든다. 아무리 바쁜 세상일지라도 순백의 설경 앞에서는 잠시 정갈한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창을 열어보니 무언가 내릴 듯 하늘이 잔뜩 내려앉아 있다. 차가운 날씨라 차를 예열하여 천천히 출근길에 오른다. 길가에 늘어선 남천은 선명한 붉은 빛을 발하며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멋지게 익어간다. 달랑 한 장으로 남은 올해 남은 날을 헤아려가며 못다 이룬 일들을 머릿속으로 꼽아본다. 700여 시간 남은 기간, 무엇을 우선으로 해야 할까.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도 들려 올 것만 같은 거리를 지나며 카 오디오를 켰다. 청취자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양, 아침 방송 진행자는 “눈이 내리네~”를 틀어준다.

‘눈이 내리네, 당신이 가버린 지금/ 눈이 내리네, 외로워지는 내 마음/꿈에 그리던 따뜻한 미소가 흰 눈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네 / 하얀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그 모습/ 애처로이 불러도 하얀 눈만 내리네//…중략…// 하얀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그 모습/ 애처로이 불러도 하얀 눈만 내리네’

차창을 내리고 밖을 보니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은 사람들이 횡단보도에 서있다. 그들도 모두 “눈이 내리네~라 라 라라라~라 라 라라라~”하면서 속으로 따라 부르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내 마음대로 세상이 그리 보이는 것이지만, 오늘 따라 왠지 저들의 기억 속에도 첫눈 내리는 날 만나기로 약속한 그리운 이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어울리는 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유상종, 비슷한 사람끼리 만난다고 하지 않던가. 친한 친구와의 사이에는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1프로의 차이가 있다는 보고도 있을 정도이니 그들 사이의 교감의 정도가 얼마나 강력하고 끈끈하랴.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누구와 어울리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자주 만나는 이들 사이에는 감정도 잘 전염이 된다고 한다. 긍정적인 사람과 자주 교류하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삶도 밝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반대로 부정적인 사람과 만나 부정적인 생각을 자꾸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표정도 행동도 삶도 어느새 부정을 부른다. 전염력이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행복 바이러스라고 하지 않은가. 행복한 사람과 만나면 내가 행복하고 또 나를 만나는 나의 친구가 행복하고 또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게 된다. 그러니 행복한 한 사람이 결과적으로는 열 명, 아니 백 명, 수천 명의 행복한 사람을 만들게 되는 셈이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무엇이라도 내릴 듯한 날이라도 흥얼흥얼 콧노래 불러가며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아야 하리라. 그래야 행복한 미래가 찾아올 것이니.

창가에 서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환자 명단을 들여다보다가 뒷목에 닿는 느낌이 생소하여 올려다보니 행운목이다. 그곳에서 일렁인 지가 수년, 그냥 그대로 정물로 서 있는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내음까지 풍긴다. 살펴보니 옥수수 잎 닮은 무성한 행운목에 전에 볼 수 없던 넝쿨이 늘어져 있다. 넝쿨을 따라 꽃 뭉치가 주렁주렁 달렸다. 행운목에 꽃이 피어난 것이 아닌가. 꽃송이 아래에는 눈물방울까지 맺혀있다. 와아∼!행운목이 꽃을 피우다니~!

행운목 꽃의 꽃말은 행운, 행복, lucky, happiness다. 행운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좋지 않은가. 행운목 꽃은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꽃이라더니 난생 처음 본 꽃이 정말로 수수하기까지 하게 느껴진다. 행운은 어쩌면 쟁취하는 것일까. 행운목은 얼마나 정성을 들여 기르느냐에 따라 꽃이 피는 것일까. 아니면 극도의 어려운 환경에서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 꽃 피우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꽃이 필 상황이이라서 꽃이 피어나지 않았으랴. 행운목의 영명은 Lucky Tree라고 한다. 자주 또는 아주 드물게 필 수 있지만, 아예 꽃이 피지 않을 수도 있다지 않은가. 어쩌면 사람의 행운도 이와 같지 않을까. 행운을 맞을 상황을 항상 준비하는 사람, 행운이 찾아와도 모르고 그냥 흘려버리는 사람, 아예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 등, 우리에게 찾아오는 행운,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지는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피어난 행운목 꽃을 보니 생명을 가진 모든 이에게 오늘이 바로 행운이 아니랴 싶다. 살아있는 오늘을 축복으로 여기고 만족한다면 하루하루가 행운이지 않겠는가. 날마다 행운을 발견할 수 있기를.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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