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반

AI와 함께하는 세상 (47) 세상 변화의 이름 ‘혁신’

미국 테슬라 기업은 2003년 창립이라는 비교적 짧은 업력에도 불구하고 미래 학자들 사이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시류에 가장 안착한 자동차 기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버는 플랫폼 기업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 차량과 그 차량이 필요한 승객을 연결시켜주는 일종의 ‘브릿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넷플릭스의 이용 가입자 수는 미국 내 5천만 명에 육박하고 세계적으로는 1억5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넷플릭스의 성공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바로 ‘지칠 줄 모르는 공격성’과 ‘콘텐츠의 오리지널’이다.


‘혁신’은 무작정 ‘새로움’에 국한되지 않는다. 새롭되 세상을 변혁시켜야 할 책무가 상존한다. 새로운 것은 많다. 새 학기에 들어 처음 만난 새로운 담임 선생님, 친구들,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난 후 처음으로 부대낀 회사 내 선배, 동기들, 수십억 분의 1이란 ‘선택받은 유전자’를 타고 첫 번째로 만난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이 모두가 새로움의 연속이건만 이를 두고 혁신이라 지칭하진 않는다. 혁신은 ‘파괴’를 수반한다. 그것도 선한 의미가 선순위 돼야 할 까다로운 조건을 수반한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엔터테이먼트적 요소가 새로움이라면 자율 주행의 ‘편의’와 ‘안전성’은 바야흐로 변혁의 경지로 풀이된다.

혁신가에 관한 보호를 ‘의무화’ 할 필요가 있다. ‘선천적 혁신가’를 폄훼하지 않은 채 개별의 아이덴티티를 존중, 이와 더불어 ‘후천적 혁신 가’를 인내하고 발굴해 낼 수 있는 ‘사회적 시각’이 요구된다. 마치 ‘실리콘밸리’의 그것처럼 말이다.

◆세계적인 혁신가들

‘넷플릭스’는 미국 엔터테이먼트 시장의 상징적 기업이다. 회사의 주력은 영화에 인터넷을 가미한 ‘스트리밍 서비스’. 스트리밍이란 상시재생의 기법을 인터넷과 각종 영상에 투영·연계시키는 기법으로 1990년대 중반 대중에 첫선을 보였다.

넷플릭스의 전신은 ‘비디오 대여 사업’으로부터 비롯된다. 비디오 산업은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호황을 누렸는데, 이는 당시만 하더라도 파일을 내려받는 방식이 아닌 비디오를 통해서만 영상을 접했던 시류에 기인하다.

이 같은 비디오의 몰락과 함께 넷플릭스는 영상과 음성을 디지털의 과정을 거쳐 저장해내는 DVD를 거친 뒤 지금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투신한다.

현재 넷플릭스의 이용 가입자 수는 미국 내에서만 우리나라 인구에 버금가는 5천만 명을 육박한다. 세계적으로 추산해볼 땐 전체 인구의 2% 정도에 해당하는 1억5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넷플릭스의 창업주는 ‘리드 헤이스팅’이다. 2010년 애플의 ‘스티븐 잡스’를 제치고 포춘이 선정한 ‘2010년 올해의 기업인 1위’로 선정된 바 있는 헤이스팅에겐 ‘불가사의한 능력자’, ‘골리앗에 맞선 다윗’, ‘DVD의 몰락을 예견한 선견지명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들이 마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넷플릭스의 성공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바로 ‘지칠 줄 모르는 공격성’과 ‘콘텐츠의 오리지널’이다. 넷플릭스는 ‘디즈니’를 공략한다. 디즈니가 무엇인가. ‘애니메이션의 상징’, 이자 ‘패밀리 콘텐츠’의 고유명사와 같은 엔터테이먼트 업체다.

넷플릭스는 디즈니와의 공격적 콜라보를 성공적으로 일궈냄으로써 OTT(Over The Top) 기업으로의 용틀임을 시작했다.

여기서 OTT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의미하는데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2년에 성사된 이 역사적 협업의 대가로 매년 3천억 원에 이르는 판권이 투입됐다. 판권은 저작권자와의 계약을 성사함으로써 저작자로부터 파생된 저작물의 이용, 복제, 더 나아가 판매 등에 이르는 각종 이익 등을 독점한다는 권리 양식이다.

넷플릭스의 아이덴티티는 ‘고유성’으로 대변된다. 보통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장에 잠입돼 있는 콘텐츠를 사들여 재공급해 오던 기존의 방식을 탈피, 넷플릭스 개별로의 콘텐츠 범주를 공고히 함으로써 ‘콘텐츠의 오리지널화’를 실현하기에 이른다.

넷플릭스는 이용자와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클릭 몇 번으로 보고 싶은 영상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러니까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한 ‘편의성 측면’과 더불어 연작의 경우 끊기는 일 없이 ‘원스톱’으로 시청하고픈 소비자 심리를 적극으로 취합, 이로써 넷플릭스는 명실공히 전 세계 스트리밍 시장의 30% 이상을 독점함과 더불어 여타 매체와 전 세계인들의 갖은 호평을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다.

‘테슬라’는 태생부터 이례적이다. IT, 벤처문화의 산실로 점철되는 실리콘밸리에 자동차 산업이 태동했다는 자체부터가 우선 혁신이다. 테슬라는 곧 ‘전기자동차의 아이콘’으로 대변된다.

전기차는 말 그대로 기름의 힘이 아닌 전기를 통해 동력을 창출해내는 자동차다. 영문명으로 electric vehicle. 실리콘밸리의 팔로알토에 위치한 테슬라는 비교적 짧은 업력(창립 2003년)에도 불구, 미래 학자들 사이에선 ‘4차 산업혁명의 시류에 가장 안착한 자동차’로 평가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창업자 엘론 머스크의 이력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인 엘론의 캐치 프레이즈는 바로 ‘재생’과 IT, 그리고 그의 괴짜 적 천재성이 십분 가미된 ‘우주산업’으로 요약된다.

테슬라의 전기 자동차는 오롯이 ‘환경을 위함’이다. 이에 엘론은 친환경의 모토를 제반에 두고 ‘단점의 장점 화’ 전략을 꾀한다. 과거 전기차의 주요 맹점으로 꼽혀온 디자인, 주행거리 등의 요소를 불식시키는 것이야말로 테슬라 전기차의 핵심기술이다.

테슬라는 가솔린 자동차가 지니지 못한, 그중에서도 좋은 방향의 시그니처를 여럿 표출해내기에 이른다. 1회 충전에 400㎞ 이상 운행이 가능한 주행거리와 최대출력(4초) 약 100㎞에 달할 만큼의 스피드를 대중 앞에 선보이게 된다.

연비는 말할 것 없고, 디자인마저 (취향에 따라 갈리겠지만) 기존 스포츠카 못지않은 신박함 내지, 스마트하다는 평이다. 혁신에 일장일단은 어불성설이다. 진정한 혁신은 단점마저 장점으로 보완해야 하는 암묵적 의무, 또는 의미를 함의한다.

◆공유경제가 대세

이 기업을 논하자면 ‘플랫폼’의 이해가 선결조건이다. 플랫폼의 원초적 어원은 ‘스테이션’, 바로 정거장이다. 4차 산업에서의 플랫폼은 ‘특수 시스템 내부를 구성하는 베이스’를 통칭한다. 다시 말해 총체적 요소는 제반에 두되, 이에 파생된 시스템적 부산물을 연계, 아울러 개발해내는 개념이다. 조금 더 쉽게 보자면 일종의 ‘브릿지’로 설명될 수 있다.

택시 한 대 없이 세계 최대 규모의 택시회사로 성장한 아이러니한 기업 ‘우버’를 드러내기 위한 사설이 길었다. 우버는 플랫폼 기업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 차량과 그 차량이 필요한 승객을 연결시켜주는 일종의 ‘브릿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올해로 창업 10년째를 맞은 우버. 창업자 트레비스 캘러닉은 벤처의 기본소양 중 하나로 꼽히는 ‘공격성’을 담뿍 드러내고 있다. 사실 개인적 부침에 설왕설래를 거듭 중이지만, 어찌됐건 ‘공유경제’의 기조에는 그 누구보다 마초 적 기질을 띈다. 참고로 우버의 경제적 가치는 한화 기준 약 75조 원에 육박한다.

공유경제에선 모든 물품을 ‘사유의 의미’가 아닌 ‘공유의 모토’로 둔다. ‘렌트’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협업’, ‘협동’의 기조로, 예를 들어 어떠한 서비스건 개인이 보유하지 않고 자신이 쓸 만큼의 (본인 기준) 정량만 빌려 쓰는 것을 의미한다. 나머지는 (서비스를) 더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우버는 곧 ‘공유경제’로 빗대어진다. 기존의 택시산업 중 파생되는 (사납금 등) 높은 비용을 일정 부분 해소시킨다. 통상 택시업계에 부여되는 ‘택시 번호판 총량 규제’에 묶여 발생되는 지대를 우버는 피해간다.

이 지점에서 분명 ‘규제혁파’냐, 또는 ‘규제회피’냐에 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을 사실 하나, 우버는 렌트의 개념을 두고 사유가 아닌 공유의 프로세스를 강조함으로써 우버 스스로의 시장점유율을 켜켜이 쌓아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구획과 범주에서 벗어나야

말썽쟁이였다. 천재적 기질은 분명했으나 그러한 기질이 자칫 ‘이단’으로 치부될 리 충분해 마지않을 그였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세계 유수의 IT업체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지만, 자신의 여자 친구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복수 프로그램’을 생성하는가 하면, 어렵게 입학한 일류대학을 중퇴해버리는 등 통상의 과정을 벗어난 특이한 궤적을 보인 그였다.

하지만 사회는 그를 특이하게 보지 않았다. 되레 특별한 시각으로 지켜본다. 그의 저력을 꽃 피우고자 하는 투자자와의 연계에 여념 없고, 그가 믿는 ‘맹신’을 ‘혁신’으로 인정했다. 그러면서 천재성을 결코 유리되게 하지 않았다. 복수의 시스템을 선한 의미의 혁신적 기술로 업그레이드시킨 셈이다.

시가총액 700조 원에 이르는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은 이렇게 탄생했다. 자칫 궤변으로 간과될 뻔한 그의 괴짜적 기질에 투자자 ‘피터 틸’은 배팅했고, 개인사에 국한됐던 어느 프로그램을 실리콘밸리는 ‘파괴적 혁신’이라 여겨 발굴해냈다.

혁신에 이데올로기와 민족성은 투영되지 않는다.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역설하던 시기는 이미 흘렀고, 파괴적 새로움에 ‘민족’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주창하던 구태란 이젠 물러나야 할 시점이다. 혁신은 다만 초월적이어야 하며, 혁신가는 단지 구획과 범주로 나뉜 채 선별돼서도 안 될 노릇이다.

혁신의 기로에 섰다. 여기엔 두 가지 갈림길이 보인다. ‘리더의 험로’와 ‘추종자의 꽃길’. 당신은 과연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글·사진 군월드 IT 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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