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릇-바다11 / 최동룡

자정(自淨)의/ 이마를/ 바윗돌에 간다//

흰 피를 다스려/ 맑아지는/ 물그릇을 본다//

철썩!/ 따귀를 맞는다/ 내가 시퍼렇게 정신이 든다

- 시집『울릉도로 갈까나』(문학세계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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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울릉도로 갈까나’는 오래 전 울릉에서 교편생활 할 때 쓴 시들을 묶은 시집이다. 울릉군 소재 유일한 고등학교로 부임해 들어가 가슴을 열고 그곳의 바람과 파도와 짠 물기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며 교감한 결과물이다. ‘큰 그릇’은 바닷가 갯바위에서 ‘철썩!’ ‘철썩!’ 연신 거칠게 내려치는 파도를 통해 머릿속 군더더기 다 비워내고 정수리로부터 시퍼런 정신으로 꽉 채워지는 정화의 경험을 노래하였다. 같은 파도일지라도 해안선에 서서 내 쪽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는 감상과 바다 한가운데 갯바위에 서서 때리고 맞는 파도를 대할 때의 느낌은 다르다.

그것도 바위 가장자리에서 파도의 물보라가 사정없이 뺨을 후려치는데, 덩어리째 산소를 들이킬 때의 호흡은 보통의 들숨날숨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오히려 ‘맑아진다’라거나 ‘정신이 든다’란 시어가 자칫 상투적인 느낌이 들만큼 시퍼런 각성이 깊고 엄정하게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 공명한다. ‘큰 그릇’의 상대어는 작은 그릇이겠으나 그야말로 ‘찻잔 속의 파도’와는 대비되는 개념의 크고 묵직한 날것의 격랑인 것이다. 그럴 때 스스로 이마를 바윗돌에 부딪치며, 철철 넘치는 흰 피 다스려 스스로를 정화한다.

이를테면 기장미역의 맛이 좋은 건 그 지역의 물살 때문이다. 강한 계절풍의 영향으로 조류의 상하유동이 좋아 질이 좋고 병충해의 피해도 적다. 쫄깃한 맛도 요동치는 그 물살 때문이다. 생선도 마찬가지며 대부분의 해산물이 그렇다. 그런 물살과 파도를 견디지 않는 바다는 건강하지도 맑지도 않다. 그 속에서 온건하게 자란 해산물은 우리 입맛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자연산을 고집하고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자연 상태 그대로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지 말아야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적절한 원시성은 유지되어야 하고 포기해서도 안 될 일이다. 한 정당의 정체성도 마찬가지다. 특히 개혁진보를 표방했을 경우 대화와 타협도 해야 하고 확장성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본래의 명징한 원칙과 소신을 퇴색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선명성과 야성이 탈색된 어정쩡한 상태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며 무엇도 얻지 못한다. 정당이 그 정체성을 잃으면 그 존재의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구성원 각자의 치열함과 역동성의 부족이 원인으로 봐지는 최근의 이런저런 잡음들이 걱정스럽다.

‘철썩!’ 따귀를 맞고 시퍼렇게 정신이 좀 들었으면 좋겠다. ‘큰 그릇’이 가르치는 대로 자정의 이마를 바윗돌에 열심히 갈면서, 필요하다면 스스로 몸을 비틀어 물살도 만들어야할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역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민정수석의 역할이 꼭 겉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존재감이 없어도 너무 없다. 처음엔 몰랐는데 청와대의 입도 좀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 와중에서 검찰개혁이 시대의 요구임을 잘 알고 있는 추미애 법무장관 지명을 환영한다. 특유의 깡다구와 결기로 개혁을 잘 이끌어주길 기대한다. 아무쪼록 개혁의 로드맵이 후퇴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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