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화의 가치

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기억은 기록이 되고, 기록은 문화가 된다’는 말이 있다. 또 ‘기록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미래가 된다’는 말도 있다. 기록문화의 가치를 강조한 표현들이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고 변형된다. 하지만 기록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 이 기록이 차곡차곡 쌓이면 역사가 되는 것이며, 그 역사가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게 된다. 이 때문에 인류는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1992년에 이르러 유네스코는 세계기록유산 등재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현재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기록물은 모두 16건이다. 이는 국가 단위로 아시아 1위, 세계 4위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은 기록문화를 중시했다.

기록은 존재만으로도 우리들에게 교훈을 준다. 훗날 우리의 행적이 평가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오늘날 하루하루의 삶을 함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안전장치로 봐야 한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과 일성록, 승정원일기 등 국가와 통치자의 기록은 역사가 돼 미래의 나침반이 되고 있다. 난중일기 등 개인의 기록인 일기도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특히 개인 또는 집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한경쟁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교훈적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와 함께 기록은 역사 및 문화 정체성을 찾는 통로로 그 기능을 수행한다. 기록물의 탐색을 통해 문화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으며, 이를 브랜드화함으로써 도시마케팅을 위한 자산으로도 쓰임새가 있다.

기록문화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문자를 이용해 어떤 것을 적어 놓음으로써 형성된 문화’다. 이는 기록이 아날로그 방식인 문자에 의존할 시대의 정의다. 하지만 디지털기술을 기반으로 한 멀티미디어 시대인 오늘날에는 책, 신문, 잡지, 포스터, 그림, 악보, 영화, 지도 등 모든 매체에 담긴 콘텐츠가 기록물로 인정된다. 이 때문에 요즘 기록보관소로 번역되는 아카이브(archive)와 기록을 보관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아카이빙(archiv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소속 기관들은 물론, 개인도 기록문화의 가치를 인식하고 기록을 남기려는 의지로 해석되기에 바람직한 방향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직지(直指)’를 간행한 흥덕사 소재지인 충북 청주는 1992년 고인쇄박물관을 개관하고, 올해 대한민국독서대전을 유치하면서 ‘기록문화 창의도시’임을 주창하고 있다. 또 전라감영 소재지로 ‘완판본(完板本)’을 간행했던 전북 전주는 2011년부터 전주한옥마을에 완판본문화관을 운영하면서 ‘기록문화의 도시’임을 내세우고 있다. 또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소장한 해인사 소재지인 경남 합천은 매년 ‘합천기록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대구는 어떠한가.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직까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지만, 최근 시민들의 다양한 시도가 잇따르고 있어 한 줄기 빛으로 느껴진다.

지난주 봉산문화회관에서는 ‘동인동인(東仁同人)- linked 아카이브展’이 열렸다. 이 전시의 주인공은 1969년 대구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동인시영아파트다. 중구 동인동에 자리 잡은지 51년만인 내년 초 재건축으로 사라질 운명에 놓인 이 아파트는 4층 복도식이며, 계단 대신 나선형 경사로가 특징이다. 아파트 및 거주자들 삶의 흔적을 기록하기 위해 모인 예술가들은 지난해부터 2년간 아파트란 근대적 건축물이 지닌 상징성과 신천 등 주변의 역사성이 뒤섞인 공간을 꼼꼼하게 탐사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아파트의 주거문화와 도시생태의 이모저모를 이 동네 어린이들의 시선으로 재발견한 그루터기 탁본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올해는 예술가의 시각으로 접근한 미디어 파사드, 인형극, 1일 숙박체험 게스트하우스, 메가폰 슈프레히콜, 레시던시 글방, 미디어 아트, 텍스트 아카이브 등이 공연 또는 운영된 뒤 기록물로 전시됐다.

이에 앞서 내방가사문학회는 지난달 28일 수성구립 용학도서관에서 ‘제1회 영남내방가사 어울마당’을 열었다. 이 행사는 내방가사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시도다. 내방가사는 조선시대부터 주로 영남지역 여성들에 의해 창작되고 향유된 한글문학으로, 세계에서 유일한 집단 여성문학이다. 이날 회원들은 허난설헌의 ‘봉선화가’와 작자 미상의 ‘경상도 칠십일주가’ 등 전승된 내방가사와 함께, ‘자탄가’ ‘도동서원 보물담장’ 등 자작 내방가사를 낭송했다. 또 두루마리 또는 책자 형태의 내방가사를 전시해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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