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군군월드 대표
▲ 이동군군월드 대표
1812년 발발한 ‘영미전쟁’은 ‘영국 우월주의’의 발로였다. 당시 영국으로선 신흥 연합국에 불과한 미국이 눈엣가시였을 터. 영국은 미국의 기세를 단박에 무너뜨릴 요량으로 대통령 관저에 폭격을 퍼부었다. 이 폭격으로 관저 대부분이 불에 타 소실됐다.



하지만 관저 소실은 텅 빈 황망함 대신 꽉 찬 알맹이를 미국에 안겼다.



영국이 퇴각한 후 미국은 대통령 관저에 관한 전 방위적 이전 및 복구 작업을 벌였다. 불에 그을 린 흔적을 지우기 위해 하얀색 페인트로 도배하는가 하면, 내친김에 특별하되 대중성을 머금은 아이러니로 변모를 꾀했다. 이것이 바로 ‘백악관’ 탄생의 유래다.



이 후 각 정부를 거치며 백악관의 정체성은 켜켜이 쌓여갔고, 현재 백악관은 건국 초기양식의 심벌로 불특정 다수 누구에게나 개방돼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되, 새 부대의 근간만큼은 ‘대중 민주주의’의 시그니처로 부잡스럽지 않게 업그레이드 시킨 셈이다. 한 마디로 ‘전화위복’이었다.



전쟁 같았다. 영미전쟁이 2년간의 지루한 다툼에 그쳤다면 대구시 신청사 결정을 위한 공론화 과정은 15년의 부침을 뜨겁게 감내해야만 했다. 250명의 시민 참여단이 이른바 ‘숙의형 민주주의’의 캐치 프레이즈로 입지선정에 참여했다.



신청사 유치 후보 4개 구·군은 그간 개별의 방식으로 각기의 우월성을 드러냈다.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닌 폄하와 왜곡, 과중한 마케팅 기법을 서슴지 않고 발현했다.



이로 말미암아 페널티가 난무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역갈등, 부대비용 초과, 정치적 이해관계 등의 난제마저 오버랩 되며 막판까지도 진통을 겪었다. 상흔을 메울 봉합 과정은 오늘부터 진행형이다.



이제는 정전이다. 결과는 분명 도출됐고 승복해야할 시점이다. 경제성과 접근성, 거기에 균형발전 등의 사안이 한데 어우러져 완벽할리 없지만 어쨌든 우위는 선정됐다. 알맹이를 거듭 채워야 하며 새 술을 담아내기 위한 알찬 새 부대 건설만을 논의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선 세 가지 사안을 우선 충족해야 한다.



첫째는 융합이다. 4차 산업의 도래는 개별의 산업군으론 여력이 없다. 의료와 IT의 접목, 패션과 인공지능의 융화 등은 필수불가결한 요소. 도래할 시청은 기업과 기관, 시민과 공무원이 한데 어우러질 ‘소통의 요지’로 발돋움해야 한다.



행정부서로 빽빽이 메워질 시청 대신, 불특정 다수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가교’ 로의 시청이 절실하다. 요청과 처리, 경계와 단속의 이항 관계를 넘어 진정한 공무를 위한 시민과의 잦은 화합을 시청은 이끌어내야 한다.



단순 지방정부로의 시그니처는 희석하되 복합공간으로의 시너지로 자리매김하는 것, 이처럼 미래도시, 신문화 창출의 요람이야말로 신청사의 당위다.



둘째는 하이테크놀로지다. 테크놀로지의 어원처럼 시민의 요구를 적극으로 수렴, 이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공급할 수 있는 과학적 프로세스가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창의를 모체삼아 섬유를 비롯한 지역의 전통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혁신의 모멘텀을 구축해야 한다.



벤처기업을 향한 규제혁파와 각종 과학 정책 수립, 아울러 지역 인재육성 및 신 일자리 창출을 위한 외자유치에도 가일층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이 과정에서 원론은 뒤로 물리고, 이론 역시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 오직 ‘가시적 실행’ 만이 남았다. 이를 위해선 기존의 구태는 청산해야 한다. 각종 변수와 사례를 빅 데이터화 해 시민을 위한 큰 범주 내 신속한 행정처리가 수반 돼야함이 마땅하다.



신청사의 또 다른 이름을 기대해마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혁신기술의 시발점.’



셋째는 ‘시민 민주주의’의 상징성 제고다. 누구나 접근할 수 없는 지방정부의 엄중함을 일정부분 버리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지방정부의 포용을 일부라도 선사해야함이 옳다.

별 반 다를 게 없을 한가로운 오후, 시청 전망대에 올라 여유로운 커피한 잔을 나눠 마시고, 지역민을 넘어 세계인 누구나 대구의 역사를 원스톱으로 접할 수 있는 지역 명소로서의 시청, 이와 더불어 지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지역민, 공무원 누구랄 것 없이 머리를 맞대 아울러 고찰할 수 있는 랜드 마크로의 시청을 기대하는 바다.

마치 ‘화마의 뜨거움’ 을 ‘성조기의 따뜻함’ 으로 승화시킨 백악관의 사례처럼 말이다.



그간 신청사 유치를 위해 벌여온 전쟁 같던 시절이 부디 ‘시민 복리’로 되돌아오길 바라마지 않는다.



별스러울 것 없다. 신록을 머금은 젊은이들의 ‘인스타그램 성지’, 당신과 내가 염원하는 미래 시청의 따듯한 기대요소다.





군월드 이동군 대표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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