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수출입에 대한 발상의 전환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최근 한국원자력연구원(이하 KAERI)이 연구원 공채에서 중국인을 선발한 사실이 밝혀져 채용 여부를 놓고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 이 합격자는 재외동포 출신으로 KAIST에서 기계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KAERI는 ‘가’급 국가보안시설이지만 채용과 관련해 외국인의 취업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다만 KAERI에서 다루는 전략물자, 국가기밀 등 보안과 관련한 일부 과제에서 외국인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제한된다.

이 문제로 인해 블라인드채용이 도마 위에 올랐다. 블라인드채용 때문에 외국인을 걸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채용에 대한 논란은 부차적인 문제로 보고 여기선 살짝 비켜가기로 한다. 외국인 채용의 필요성과 그 기준에 대해 논의할 기회를 준 점에서 블라인드채용은 오히려 우리사회에 시의적절한 어젠다를 던진 셈이다. 우리사회가 통 큰 개방으로 응답할 차례다.

우리는 벌써 다문화사회에 살고 있다. 다문화사회란 다른 인종·민족·계급 등 여러 집단의 문화가 한 국가나 한 사회 속에 공존하는 사회다. 급속한 세계화에 따라 국가 간 인구이동이 활발히 진행된 결과다. ‘다문화고부열전’이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고, 다문화가족 2세들이 출연하는 예능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단일민족국가란 말이 역사 속의 유물이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의식 속엔 여전히 케케묵은 녹슨 잔재들이 많이 존재한다. 일자리도 그 중 하나다.

외국인에게 개방된 일자리는 흔히 말하는 3D업종이 대부분이다. 전문직이나 연구직 등 고급 업종의 개방은 인색한 편이다. 공직을 비롯한 공기업도 거의 외국인 금역이다. 저임금의 기능직이나 허접한 일은 무제한 개방하면서 고소득의 기술직이나 고급 업종에 대해선 은근히 빗장을 거는 이중성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외국인에게 고급 일자리를 개방하자는 주장은 어쩌면 황당한 궤변으로 비칠 수 있다. 그렇지만 청년들에게 해외 일자리를 권장하는 저간의 사정을 감안하면 단지 궤변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일자리 개방은 상대국가에서 개방된 정도만큼 맞춰주는 상호주의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맞는 말이다. 상대국가가 우리보다 인구가 많고 소득이 높은 나라일 경우는 이득이고 그 반대일 경우는 손해라는 셈법이 나올지 모른다. 단순한 건 아니다. 우리 정도의 처지를 놓고 보면 일반적으로 두루 개방하더라도 불리할 경우는 거의 없을 듯하다. 미국이나 유럽의 질 좋은 일자리만 하더라도 우리가 수용할 일자리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중국도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기회의 땅이다. 먼저 선수 치는 것이 고수다.

청년을 해외로 내보내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단정할 순 없다. 인재를 키우기 위해 들어간 시간과 노력과 희생을 상기해 본다면 공들여 키운 우리 인재를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 생길 리 만무하다. 역지사지해보면 외국의 인재를 모셔오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라는 생각도 들 법하다. 어느 것이 맞는지 헷갈릴 판이다. 키우기 힘든 인재일수록 외국인을 적극 유치해야 한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양차 세계대전 이후 유태인을 비롯한 세계 인재들이 이룩한 결실이다. 글로벌 인재 수입이 오늘의 ‘팍스 아메리카나’의 핵심요체다.

우리는 2002년 월드컵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히딩크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각종 연줄에 뒤엉켜있던 축구계에서 편견 없이 오직 실력만으로 선수를 기용한 용인술에 세계적 선진 기법을 버무린 시너지였다. 글로벌 인재 영입의 파괴력을 잘 보여준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상황도 인재 수입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국가 간 인재 교류는 스포츠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권에도 개방적 자세가 필요하다. 선진 정치를 앞당길 묘수일 수 있다. 배타적 종족순혈주의는 구시대 유물이다. 폐쇄적 지역주의와 인종주의는 망국으로 이끌지만 포용과 개방은 선진사회로 가는 첩경이다. 인구감소 국면에선 인재개방이 더욱 절실하다. 귀화는 금상첨화다.

애써 키운 인재를 미국에 갖다 바친 어리석음을 깨닫는다면 우수한 외국인 인재를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 외국인 고용으로 인해 당장 일자리를 뺏긴다고 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론 국제경쟁력을 높여서 종국엔 내국인 일자리를 창출한다. 보안 문제는 퇴사 후 동종업종 고용을 제한하는 등 다른 차원에서 민사적으로 해법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다. 내국인이라고 국가기밀을 지킨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법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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