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과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

발행일 2019-12-25 15:01:3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장발장과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우리를 찾아왔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퇴근길. 번화가를 지나치다 어느선가 들려온 크리스마스 캐롤과 한껏 멋을 부린 크리스마스 트리가 눈에 들어왔다.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며칠 전부터 예약해 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손에 들고 걸음을 재촉하는 가장들이며, 다정스럽게 손을 잡고 눈웃음을 마주하며 어디론가 걸어가는 연인들을 모습은 가슴을 훈훈하게 했다.

그중에서도 백미라면 백화점이나 대기업 본사 빌딩과 같이 지역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나 거리에 장식된 대형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이 아닐까 싶었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미국 뉴욕의 록펠러재단 빌딩, 일본 도쿄의 록뽄기와 같이 세계적인 대도시들은 이맘때면 새해도 맞이할 겸 일루미네이션 투어로 북적일 정도다. 우리나라도 서울을 비롯한 지방 대도시에서는 일루미네이션 명소가 있어서 북적이기는 매한가지지만,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나쁜 경기 탓에 자중하는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를 되돌아보면 다사다난이라는 말처럼 우리 경제에 참으로 많은 악재가 있었고, 경기도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수출이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일본의 수출규제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주력산업의 서플라이체인이 위협받았다. 그나마, 베트남과 같은 동남아시아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대체 시장으로 확대된 것은 다행이다.

국내에서는 많은 정치·사회적 문제에 발목이 잡혀 경제 현안에 대해서는 진지한 논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저임금인상과 주 52시간제와 같은 노동개혁은 의욕이 앞서다 보니 현장과의 미스매치가 발생하여, 뒷수습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도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진 부동산대책은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을 뿐 아니라 경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신산업이든 기존 산업이든 기업 투자는 경기 부진과 각종 규제 등으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정부의 고용 대책은 큰 성과를 보지 못했고, 가계도 힘들어 물가는 디플레이션 공포를 상기시킬 정도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이처럼 따지고 보니 온통 우울한 이야기뿐인 것 같지만, 최근 들어 우리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중 간 1차 무역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것과 일본의 수출규제가 반도체를 중심으로 완화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뿐이 아니다.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높은 수준의 한·중·일 FTA 추진에 대한 합의도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덜어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그다지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로서는 분명한 호재다.

대내적으로도 긍정적인 변화가 보인다. 그중에 가장 반가운 것은 우리 정부가 민간에서만 25조 원이라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언급해가며 민간투자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 목표의 실현을 위해서는 노동이나 환경과 관련된 각종 규제완화에도 나서야 하는데, 이는 계획 이상의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대로 실현된다면 내년부터는 비로소 양질의 일자리 증가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고, 가계의 주름은 다소나마 펴질 것이다.

며칠만 지나면 경자년이다. 경자년은 쥐의 해를 말하기도 하지만, 어둠 속에서 세상 모든 것의 씨를 잉태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앞으로 우리 경제가 지금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년 이맘때쯤이면 퇴색해가는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의 빛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고, 얼마 전 심금을 울렸던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많은 장발장도 차차 사라질 것이다.

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크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이자 세계인권선언에 큰 공헌을 한 엘리너 루즈벨트는 ‘미래는 아름다운 꿈을 믿는 자의 것’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어려움으로 잃어버린 꿈과 희망이 있다면 새해에는 꼭 되찾기 바란다. 경기 회복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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