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산

발행일 2019-12-25 14:25:4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아버지의 유산 / 최언진

길에서 길을 묻는 그런 일 다반사지/ 나에겐 어렵잖은 이정표 하나 있어/ 길이냐 길이 아니냐 어렵지가 않았다// 부표를 떠올려서 근심 뛴 모습인가/ 안심한 모습인가 그림을 그리란다.

아버지 그 말씀 따라 길을 찾곤 하였지// 내게도 지혜 있어 평생을 써먹고도/ 녹슬어 썩지 않는 그런 말씀 있다면야/ 대대로 물려줄수록 빛을 발할 그 유산.

- 시조집 『아버지의 유산』 (시조문학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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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이라 하면 물질적인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 정신적인 유산이다. 이를테면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는 지혜가 담긴 탈무드처럼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훌륭한 유산인 것이다. 낯선 길을 나설 때 우리는 흔히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다. 그곳 지리에 빠삭한 사람을 만나면 다행이겠지만, 어설프게 아는 사람을 만나면 생고생하기 십상이다. 이때 바로 된 이정표만 있다면 아무리 낯선 길이라도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아갈 수 있다. 시인에겐 그 이정표 같은 존재가 바로 아버지이다.

갈림길 앞에서 어디로 갈까 망설일 때마다 아버지의 말씀과 표정으로 길을 선택한다. 이렇듯 인생에서 좋은 길 안내자를 만나는 것보다 귀한 행운은 없다. 더구나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께서 매번 그 향도 역할을 해주신다면야 그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 있으랴. 훌륭한 부모님이 계셔서 미혹의 길로 빠지지 않게 하고 참다운 길로 이끌어주신다면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유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집안의 전통적인 지혜가 답습되어 가풍이 되고 아버지들의 엄중한 가르침은 가훈이 되어 대대로 전해지기도 한다.

요즘 풍토에서 가훈 운운은 참으로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가훈은 경주 최 부잣집의 경우에서 보듯이 한 집안 누대에 걸친 삶의 지침이고 지혜였다. 한 인간의 인격과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필수적인 자양분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가훈은 양심에 충실할 것,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충실할 것, 믿음 속에 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척해 나갈 것, 부자도 가난한 자도 되지 말 것 네 가지였고, 노무현 대통령의 가훈은 ‘자기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라’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가훈대로 살다 가셨다. 그랬던 가훈을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대가족이 해체되고 ‘밥상머리교육’이란 말도 사라지고 말았다. ‘아버지가 없는 시대’라는 말을 들은 지 모래다. 예전에는 ‘나를 세상에 있게 한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지녔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돈이 있든 없든, 신분이 높은 벼슬아치든 쭉정이 천민이든 상관없이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랐다. 그런데 다들 먹고 살만한 세상이 되니까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옅어져만 갔다.

자식은 아버지를 보고 자란다. 아버지가 길을 내면 자식은 그 길을 걸어간다. 아버지가 걸어간 삶의 궤적을 쫓아가며 자기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시인은 아버지께서 남기신 삶의 지혜와 가르침대로 베풀면서 오늘을 산다. 경기광주 지역에서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 귀감인 분이다. 부박한 목적이 이끄는 정신없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아버지의 유지대로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면서 뜨거운 열정으로 가슴 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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