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석봉 논설위원
▲ 홍석봉 논설위원
한 해가 저문다.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한 해를 보낸다. 정치는 최악의 막장 국회가 됐다. 사회는 진보와 보수의 파열음으로 뒤죽박죽이다. 외교는 파탄났고 안보는 김정은만 바라보고 있다. 집값 폭등과 자영업자 몰락 등 경제는 바닥이다. 2019년 대한민국은 가보지 못한 길을 걸었다. ‘내로남불’만 있었다. 생각이 달랐다. 목소리만 높았다. 진영 논리에 갇혔다. 길을 찾지 못했다. 상식과 소통은 실종됐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무능한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의 책임이 크다. 새로운 길을 보여주겠다는 정부를 믿었다가 상실감만 맛봤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을 장악한 386 운동권은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적폐 청산으로 국민을 후벼팠다. 탈 원전 정책은 국민을 멍들게 했다.

운동권 진보세력의 민낯을 봤다. 민주화 투쟁에 가려진 그들의 음습한 속을 봤다. 조국 사태의 부산물이다. 그리고 광장에서 진보와 보수가 맞부딪쳤다.

진보의 전유물이었던 광장은 보수가 판을 뒤집었다. 보수의 맨 앞에 ‘꼰대’들이 섰다. 맨날 지청구만 듣던 꼰대들이 진보와 젊은이를 밀치고 청와대 앞까지 진출,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2019년 우리 사회의 주목할 만한 변화는 ‘꼰대’의 전면 등장이다. 꼰대의 출현에는 조국 사태가 크게 기여했다. ‘이게 나라냐’며 의병의 심정으로 나섰다.

꼰대들은 광화문 광장으로 갔다. 태극기부대가 길을 열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꼰대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삼전도의 ‘3배9고(3拜9叩)’ 굴종의 노예 시절로 되돌아가겠느냐며 민초들을 자극했다.

-진보 광장 장악한 꼰대들의 외침 주목해야

꼰대들의 외침에 사회도 반응했다. 민초의 각성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반성이었다. 정치구도를 바꾸려는 조짐도 나타났다. 정당 지지율도 변했다. 중도층이 크게 늘었다. 민주당도, 한국당도 보기 싫다고 한다. 한편에선 쓰러져가는 보수를 재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호남도 반응했다. 민주당의 모태인 호남 지식인층이 일어났다. 지난 27일 광주에서 ‘문재인 정권의 무능, 부패, 위선에 대해 통한의 책임감을 느낀다’며 300여 명의 호남인들이 자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호남인의 무조건적 민주당 지지가 괴물을 만들었다고 자탄했다. ‘호남은 민주당의 숙주가 되고, 호남인은 386 운동권 정치인들의 노예가 돼 있다’는 자기반성의 메시지를 던졌다. 예사롭지 않은 조짐이다.

‘꼰대’는 설 자리가 좁다. 이마저 자꾸 줄고 있다. 그런 꼰대가 변화의 중심에 섰다.

‘늙은이’를 지칭하는 ‘꼰대’는 영국 BBC 방송에 의해 해외에도 알려졌다. 최근 영·미권 젊은이들 사이에 ‘오케이 부머’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기성세대의 잔소리와 참견에 대해 “알았으니 그만하라”는 뜻을 담은 말이다.

꼰대는 한물 간 사람들의 대명사였다. 세상살이에 누가 간섭만 안 하면 그저 그렇게 묻어갈 사람들이다. 웬만하면 입 다물고 있었다. 부조리에도 눈 감았었다. 목소리도 낮췄었다. 그런데 뒤틀린 욕망들이 저들을 거리로 불러냈다. 저들이 이룩한 나라의 기틀이 흔들린다고 느껴서다.

꼰대의 속 뜻이 무조건 ‘잔소리 말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자주, 너무 지나치면 욕먹을 따름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경험과 조언을 잔소리라고 매도해서만은 안 된다. 정보화시대에 좀 뒤처졌다고 꼴통으로 몰아붙여선 곤란하다.



-꼰대의 경험과 조언 잔소리 매도는 안 돼

꼰대보다 더 나쁜 이들이 있다. 자신들만 옳다고 믿는다. 상식과 이성조차 무시한다. 정의와 진리마저 이설과 괴상한 논리로 비틀어 버린다. 이들은 꼰대보다 나쁜 독버섯이다. 그런데 이들이 현재 사회를 움직인다. 꼰대는 적어도 사회에 해는 안 끼친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자공이 사귐의 도를 여쭈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벗이 잘못된 길을 가거든 충심으로 조언하여 바른길로 이끌되,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어야 한다.”

이틀 뒤면 새해다. 새해는 경자(庚子)년 흰쥐띠의 해다. 흰쥐는 전통적으로 상서로운 동물로 여긴다. 새해에는 온 누리에 상서로운 기운이 넘치고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빈다. 꼰대들이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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