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코뿔소의 시간은 이어진다

발행일 2020-01-01 15:30:3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부형
회색코뿔소의 시간은 이어진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2020년 새해가 밝았다. 이맘때는 모두가 신년에 거는 기대가 커서인지는 몰라도 무조건 인사는 덕담으로 시작해 좋은 바람으로 끝난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가시 돋은 말은 서로 건네지 않는 것이 예의다.

우리 경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들지만 다들 어떻게 든 희망요인을 찾아내고, 어떤 식으로 든 낙관적으로 포장해서 기대하게 만드느라 애쓴다.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신년이니 만큼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가올 리스크에 대한 충분한 대응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2019년에 이어 올해도 회색코뿔소(the gray thino)의 시간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코뿔소는 커서 멀리서도 잘 보일 뿐 아니라 진동만으로도 움직임을 느낄 수 있어 달려오면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달려오면 두려움에 꼼짝없이 당하고야 만다. 이처럼 발생 가능성이 높고 빤히 보이지만, 무시되는 위험을 회색코뿔소라 하는데, 올해도 곳곳에 이들이 도사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간 경제 갈등, 중국의 부채문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중 무역분쟁은 지난해 연말 1차 협상 타결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정치추문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올 연말에 있을 대통령선거가 끝날 때까지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현재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이 모두 중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누가 후보가 되어 대통령에 당선되든 미·중 무역분쟁이 조기에 봉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올해 미국 경제가 연착륙할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라는 점 정도다.

한·일 간 경제 갈등도 마찬가지다. 과거사를 둘러싼 길고 긴 양국 간 갈등이 지난해에야 경제 문제로 비화한 것은 양국 모두에게 참으로 불편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피해를 최소화할 충분한 대응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야 양국 간 대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금씩 전환되는 것 같지만, 양국의 정치적 상황을 살펴보면 올해 안에 극적인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둔 한국은 물론 연일 터지는 총리 자신은 물론 부인 등 주변의 부패스캔들로 내각 지지율이 수직 낙하한 일본의 입장을 고려해보면 양국 간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은 쉽게 해 볼 수 있다.

중국의 부채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중국의 국가부채는 전세계의 약 15% 정도인 총 40조 달러로 국내총생산의 300%를 넘을 정도다. 문제는 중국 정부로서도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경기 부양을 위해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대출을 늘리자니 부실화가 우려되고, 가만있자니 올해 GDP를 2010년에 비해 2배 규모로 키우겠다는 약속을 어길 판이다. 그렇게 된다면 오는 2022년에 있을 공산당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4연임은 어려울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해 경제센서스를 통해 과거의 경제성장률이 상향 조정됨에 따라 이런 우려는 낮아졌지만, 그렇다고 부채문제가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내적으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불려왔던 가계부채가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다. 오랜 저성장으로 일자리와 소득이 크게 늘지 않는 상황에서 1천6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가 경제 전반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최근 가격이 급등한 부동산 시장에 갑작스러운 충격이 가해질 경우, 전체 가계부채의 약 53%를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되면서 그야말로 경제 전반에 큰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경제 정책 전반에서 나타나는 불확실성 등은 체감 정도는 다르지만, 착실하게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는 회색코뿔소임에 분명하다. 우리 경제가 올해 내내 이들 회색코뿔소들을 잘 피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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