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놀면 어때?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올해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도 주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고 있다. 주52시간제는 2018년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시행되어왔다.

다만 고용노동부는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을 감안해 1년간 계도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계도기간에는 주52시간제도를 위반하더라도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다.

2년 전 이 제도의 시행 이후 직장인들의 여가생활 트렌드가 많이 바뀐 건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주중 퇴근 이후 시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여유가 생겨났다. 각종 문화센터에서도 수강생이 급증하고 있고 특히 2030 직장인들과 남성 수강생의 증가라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일중독 국가였다. 2013년 미국의 만화작가 단체 ‘도그하우스 다이어리(Doghouse Diaries)’가 만든 세계지도가 큰 반응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세계은행과 기네스북 정보를 참고해 국가별 대표이미지를 선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도를 만든 것이었다. 프랑스는 관광, 인도는 영화, 벨기에는 휴식 등 긍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다. 거기에 비해 한국은 ‘일벌레(workaholics)’가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일벌레 이미지는 식사시간에서도 드러난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연구한 각 나라 국민들의 식사시간을 보면 한국인들은 15분이었다. 스페인, 이탈리아 사람들은 3시간 30분, 프랑스인 3시간, 미국인 2시간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일을 우선시하던 사회에서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일과 가정생활의 우선도’ 조사(2019 사회조사)에서 나온 결과다.

‘일을 우선시한다’는 응답(19세 이상) 비중은 42.1%로 이 비율은 매년 감소해왔다. 2011년 54.5%에서 2017년 43.1%로 확 줄어들었다가 지난해 다시 1.0%포인트 낮아졌다. ‘가정생활을 우선시한다’는 비율도 13.7%로 3년전 조사보다 0.2%포인트 줄었다.

반면 ‘일과 가정생활 모두 비슷하게 우선시하고 있다’는 응답 비율은 44.2%였다. 이 응답비율은 지난 2011년 34%에서 2013년 34.4%, 2017년 42.9%로 증가했다.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강조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사유하는 인간)이며 호모 파베르(Homo Faber·작업하는 인간)인 동시에 호모 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이때까지는 호모 파베르가 각광받았다. 일중독 사회에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무능하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인간형은 호모 루덴스이다. 이를 제창한 네덜란드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가 열심히 일을 하기 위한 재충전의 수단도 아니고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비합리적일 것 같은 놀이가 인간을 동물과 차별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하위징아가 이야기하는 놀이의 특징 중 하나는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즐기는 데서 나온다. 당장 눈앞의 과제인 4차 산업혁명도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창의적 상상력’으로 일해야 이룰 수 있음이다. 4차 산업혁명도 출발은 놀이에서부터다. 이제는 근면으로 포장되는 일중독이 더 이상 미덕일 수 없는 시대다.

‘주 52시간제’도 장기적으로 봤을 땐 가야할 방향인 건 맞다. 다만 이 제도의 시행에 수많은 불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디지털타임스가 2020 신년을 맞아 경제학 교수와 국책·민간연구기관, 증권사 애널리스트, 금융권 종사자 등 국내 전문가 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혁신성장을 가로막는 규제개혁 대상으로 ‘각종 인허가 규제’에 이어 ‘주 52시간 근무제’가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 정도로 산업 현장에선 아직 주52시간 근무제가 여러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호모 루덴스적인 특징을 외면할 수도 없는 시대다. 주52시간제 정착을 위한 대안을 고민할 때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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