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극작가이며 시인인 팻 슈나이더는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그것은 일종의 사랑이다.”라고 읊었다. ‘찻잔이 차를 담고 있는 일/ 의자가 튼튼하고 견고하게 서 있는 일/ 바닥이 신발 바닥을, 혹은 발가락들을 받아들이는 일/ 발바닥이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아는 일/ 나는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에 대해 생각한다. /…중략…// 계단의 사랑스러운 반복/ 그리고 창문보다 너그러운 것이 어디 있는가’
극작가이기도 한 그 시인은 어렸을 때 홀로 된 어머니가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바람에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고아원에서 지냈다. 이러한 힘든 경험은 그녀의 문학 세계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그러기에 가난과 불운 때문에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문학 활동을 평생 동안 해 오지 않았을까. 인간은 글을 쓰는 동물이라는 인식으로 고아원, 감옥, 말기 환자 병동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글로 써서 나타내 보이는 것을 그녀는 도왔다.
우리는 평범한 것들과 사랑에 빠져야 한다. 무한한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지지해주는 것들과, 입어 줄 때까지 옷걸이에 걸려 있기를 마다하지 않는 바지, 더러운 발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양말, 어떤 입술에도 아부하는 숟가락의 매끄러움, 밤새 앉아 울어도 품어주는 의자, 진짜 모습을 감추는 행위를 묵인하는 거울의 너그러움, 그것이 바로 사랑이지 않겠는가. 어떠한 환경에서도 우리의 삶을 떠받쳐 주는 평범한 것들의 은총과 같은 도움 없이 우리가 어떻게 하루를 반짝이는 날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네 삶은 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것에서라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기쁘게 살거나 그 어떤 것에서도 아름다움 대신 그늘을 바라보며 살거나. 대개 이렇게 두 방향으로 나누어질 때 어찌하면 좋을까. 우리가 평범한 이들과 평범한 사물들을 통해 어느 날 문득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날이 찾아온다면 그 얼마나 세상은 아름다울까. 바로 사물과 사랑에 빠지는 날 말이다. 문득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번쩍 띄는 경우가 더러 있다.“어떻게 이것을 못 볼 수가 있었지?” 느끼는 순간 말이다. 평범한 것들에 대한 특별한 느낌,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주제이지 않을까 싶다.
밤하늘에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른 날, 주변에 힘들어하는 이웃이 있다면 이렇게 외쳐보자. “돈 워리 비 해피” 뜻은 모두 알다시피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자주 만나는 친구는 이 문장을 이야기할 때면 늘 강조한다. 현실에 맞게 직역하자면 ‘돈 걱정하지 마~! 당신은 바로 행복해질 거야~!’라고 말이다. 애니를 좋아하는 이들은 ‘하쿠나 마타타’를 노래할지도 모르겠다. 하쿠나 마타타! 스와힐리어로 걱정거리가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지 않은가. 불행한 생각을 하면 끝없이 우울해지고 그런 우울감에서 좀체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감정에 빠진 이들이 있다면 문득 외쳐보자. 돈 워리 비 해피! 마음부터 기운을 내야 힘이 나지 않겠는가.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오늘 하루 힘든 일이 있었더라도 다 털어내고 활짝 웃는 하루가 되기를, 그리하여 웃음으로 시작하고 웃음으로 마감하기를, 2020 올 한해는 날마다 경축일이 되기를 바란다.
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