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발행일 2020-01-12 16:05:1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홍석봉 논설위원

당 태종 때 위징(魏徵)은 직간(直諫)으로 유명했다. 태종에게 200회가 넘는 간언을 했다. 그가 죽었을 때 ‘짐이 이제 한 거울을 잃었노라’고 하며 직접 묘비의 비문을 썼다. 위징의 충직한 간언과 충언을 잘 받아들이는 태종이 있었기에 당나라는 번영을 누렸다. 이 시기를 ‘정관의 치(貞觀之治)’라고 한다. 당 태종은 645년 3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원정을 감행하지만 실패한다. 돌아오는 길에 “위징이 지금까지 살아있었으면 나한테 이런 걸음을 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한탄했다. 위징이 충신으로 추앙받는 데는 위징의 끝없는 간언, 즉 ‘아니 되옵나이다(NO)’를 들어준 태종의 통 큰 리더십이 있었다.

이 시대 대표적 진보 논객으로 꼽히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조국 사태 이후 여권과 진보진영에 연일 독설을 퍼부으며 진보 저격수로 등장했다. 특히 최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SNS 등을 통해 벌인 열띤 공방이 관심을 끌었다. 그는 친여 성향의 인물과 집단을 날카로운 말 폭탄을 장착한 드론으로 맹폭했다. 보수와 진보로 여론이 두 쪽 난 상태에서 진보가 진보를 공격하는 특별난 상황에 보수 쪽은 열광하고 있다. 진보 속의 ‘NO(아니오)’ 선언이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정부 여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드물게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NO’ 선언이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부 여당이 택시업계의 눈치를 보며 마련한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시대에 역행한다며 정면 비판했다. 여당에서 처음으로 터져 나온 공개 비판이다.

-진중권, 여당 의원의 진보 및 정책 비판 속출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지난 연말 통과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법안 표결에 여당 의원 중 유일하게 기권했다가 민주당 내부에서 배신자라고 찍혔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청와대를 압박하며 권력의 비리와 부정에 대해 칼을 들이대는 등 문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해 ‘NO’라고 하다가 쪽박차기 일보 직전이다. 정권 폭주를 견제하는 윤석열의 손발이 모두 잘려나갔다. 검찰의 청와대 수사에 대한 앙갚음이다. 예스맨들이 정국을 더욱 혼란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4·15 총선을 준비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는 2014년 전남도지사 취임 후 실국장 토론회에서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야 정책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직원들의 'NO’를 주문했다. 정작 본인은 국무총리로 있으면서 그렇게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노총과 전교조가 대놓고 청구서를 날리는 데도 말문을 닫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으로 경제의 하부구조가 파탄 나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경제 기초가 튼튼하고 집값을 잡았다고 뜬금없는 소리만 해댄다. 아니오라고 말하는 경제 참모가 없기 때문이다.

외교관계도 마찬가지. 중국은 한국을 마치 속국처럼 무례를 일삼는다. 트럼프는 동맹국을 압박하며 상거래의 대상으로 본다. 미국에 대해서도 사안에 따라 분명하게 ‘NO’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에만 NO를 외친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카스 R. 선스타인은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라는 책에서 다수의 폭력을 낳는 ‘집단사고’를 고발했다. 그는 “잘 작동되는 사회는 이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와 제도를 갖춰 동조가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며 편견과 통념을 뒤집는 이견의 건강성을 강조했다. ‘NO’가 우리 사회에서 필요하다는 얘기다.

-양심과 정의 적폐 몰리는 사회, ‘NO’ 필요

지금 우리 사회는 양심과 정의를 말하고 정직했다간 적폐로 몰린다. ‘NO(아니오)’라는 말도 희귀어가 됐다. 후한(後漢) 때의 사상가 왕충(王充)도 지식인 최고의 덕목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라고 했다.

당 태종을 성군으로 만든 위징처럼, 문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는 그런 인물이 필요하다. 그런데 청와대 주변에는 ‘아니오(NO)’라고 말하는 참모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예스맨들이 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만들고 있다. 위징은 꿈도 못 꾼다. 나라가 암담하다. 청와대나 집권 여당에서 당당하게 ‘아니오(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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