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방식/ 이금주



한적한 지하철 안으로 들어섰네// 흑장미 꼭 다문 입술이 막 피어나는/ 나와 똑같은 코트를 입은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네/ 도플갱어를 보는 듯/ 여러 눈길들/ 우리를 번갈아 읽기 시작했네/ 민망한 분위기를 숨겨줄 쥐구멍은 없었네/ (중략)/ 늙은 고양이처럼 발톱을 숨기고/ 훔치듯 표정을 읽었네// 오래전 친구였네// 나비들은/ 물오른 우리의 향기에 취해/ 주위를 돌아다녔네/ 우월감에 젖어 깊이 스며들지 못하고/ 우리는 말을 잃었네/ 다시 이어지지 못했네// 끝내 서로를 놓쳐버렸네// 그렇게 또 한 사람이 떠나갔네// 오늘은 내가/ 내일은 차창에 비치는 또 다른 내가



ㅡ 계간 ‘문학청춘’ 201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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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장미 꼭 다문 입술이 막 피어나는’ 무늬의 코트를 잘 차려입고 지하철을 탔는데 자기와 똑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았다? 이럴 때 여성들은 대개 기분이 별로다.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하려들거나 민망해서 상대의 시선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졸지에 몰개성으로 취급당한다든지 흔한 바겐세일에서 구입한 옷으로 비쳐질 수도 있어 기분이 영 찝찝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 지하철엔 뒤뚱거리는 펭귄처럼 고만고만한 검정 패딩을 걸친 사람들로 빼곡하다. 민망할 일도 반가울 것도 없다. 어차피 서로를 놓치고 ‘또 한 사람이 떠나’가면 그만인 것을.

유시민 이사장은 jtbc 신년대담 며칠 뒤 ‘알릴레오’에서 진중권 씨에 대해 “이별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최대한 존중하며 작별하는 게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어떤 때에는 판단이 일치했고 길을 함께 걸었던 사이지만 지금은 갈림길에서 나는 이쪽으로, 진 전 교수는 저쪽으로 가기로 작심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한때 두 사람은 정치적 지향이 같았고, 고 노회찬 의원과 더불어 팟캐스트를 함께한 적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조국 사태 과정을 통해 현격한 견해 차이를 드러내면서 날선 공방을 벌이다가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했다.

발단은 유 작가가 동양대 총장에게 전화한 것을 두고 진 교수가 “취재가 아니라 회유라고 봐야 한다”고 객관적 근거 없이 주장한데서 시작되었다. 정황상 그렇겠다는 것을 심증으로 굳힌 결과였을 터이지만, 유 작가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러한 충돌은 진보진영 안에서도 흔히 보아왔던 터라 전혀 낯설지 않다. 진 교수의 리버럴함과 독자적 엘리티즘은 그동안 다른 진보인사와 빚은 여러 차례의 마찰로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자기 혼자만 양심적이고 결벽하다는 듯 다른 사람을 쉽게 단죄하고 매도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정의와 무관하게 집단논리에 의해 지배받고 싶지 않은 사람임은 분명해 보인다. 자기 확신이 몹시 강해 사과나 유감표명도 그의 사전엔 없다. 이번 조국 사태에서 보여준 그의 논리대로라면 과거 ‘조영남 그림 대작’사건에서 그를 전폭적으로 옹호할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 그는 그때도 일반의 정서를 무식쟁이의 저급함으로 매도해버렸다.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등 거장의 명작도 제자나 조수와 협업한 결과물이란 것을 관련 자료로 밝히려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 그것과 이것은 다르다? 유 작가는 그런 그에게 질린 듯했다. 유 작가는 성찰을 ‘이별의 방식’으로 권했지만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그 조언은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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