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소원지 이야기

발행일 2020-01-13 15:13:1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2020년 새해를 맞은 지 벌써 보름 가까이 지났다.

새해가 되면 올 한 해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을 생각하게 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이 품은 소망을 깨끗한 종이에 써서 나무나 줄에 매달거나, 벽에 붙이거나, 불에 태우거나, 풍선에 매달아 하늘로 날렸다. 이 종이를 ‘소원지(所願紙)’라고 한다.

종교와 관계없이 바라는 일을 정성껏 적은 뒤 치성을 드리면 소원이 이뤄지리란 기복(祈福)의 장치인 셈이다.

소원지 쓰기는 새해를 앞둔 연말부터 해가 바뀐 연초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진행되고 있다. 새해 첫날 일출을 볼 수 있는 바닷가 또는 산 정상에서 열리는 해맞이 행사장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필수 아이템이다.

양력으로 진행되는 해맞이 행사뿐만 아니라, 음력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까지 소원지 쓰기는 이어진다. 이 가운데 올해부터 변화의 움직임도 있었다. 소원지를 풍선에 매달아 날리는 행사가 야생동물에게 피해를 준다는 지적 때문에 대폭 줄었다.

용학도서관도 소원지 쓰기 대열에 동참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새해 소망을 함께 기원하는 한편, 이용자들의 바람을 도서관 운영에 반영하는 데이터로 활용하자는 취지였다.

지난해 말 지역주민들이 기증한 책으로 크리스마스 북트리(book tree)를 만들면서 이용자들이 자신의 새해 바람을 소원지에 써서 북트리에 매달도록 안내했다. 지난주까지 이어진 이 행사에는 그림으로 소망을 표현한 어린이들을 포함해 모두 664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새해 소망은 무엇일지 유형별로 나눠봤다. 새해 소망을 글씨로 적은 소원지 586장 가운데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내용이 325장으로 가장 많았고,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는 내용이 98장으로 그 다음이었다.

또 성적 향상과 취업을 포함한 시험 합격을 소망하는 내용이 53장, 이성교제 또는 우정을 바라는 내용이 52장으로 이어졌다. 소원지 중에서 눈에 띄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도서관 입장에서 가장 반가운 소원지는 ‘독서’를 주제로 한 내용이다. 엄마 또는 아빠가 쓴 것으로 보이는 ‘아들,.책도 많이 읽어 주세요‘, ’책 좋아하는 가족으로 행복하길.‘, ’진짜 독서하는 2020년이 되길 소망합니다‘ 등이 있었다.

또 어린이가 쓴 것으로 보이는 ‘재미있는 책 많이 읽고 싶어요’, ‘책 많이 사주세요’ 등이 그것이다.

가족이 주제인 새해 소망이 많았다. ‘우리 아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요. 사춘기, 빨리 가라. 갱년기, 오고 있다’, 아빠가 담배를 끊게 해 주세요‘, ‘여동생 갖고 싶어요’, ‘둘째도 꼭 생기게 해 주세요’, ‘엄마, 마음은 집에서 모시고 싶어요’, ‘사촌형과 함께 살게 해 주세요’, ‘할머니가 우리 집에 살게 해 주세요’, ‘새해에는 좀 더 멋진 아빠가 되길!’.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소망이 상당수였다. 특히 게임 또는 반려동물을 원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브롤스타즈 보석 1000개를 받고 싶어요’, ‘휴대폰을 갖고 싶어요’, ‘강아지와 햄스터와 고슴도치를 키우고 싶어요’ ‘레고 하고 싶다. 심심하다. 나는 정당하다’, ‘내 방에 컴퓨터 있게 해 주세요’, ‘빨리 키 크게 해 주세요’, ‘빨리 어른 되고 싶어요’, ‘102개월 동안 방학되게 해주세요’, ‘엄마가 잔소리를 안했으면 좋겠어요’ 등.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직업도 자연스레 드러났다. ‘동화작가 되게 해 주세요’, ‘바이올린 천재가 되게 해 주세요’,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 ‘아이돌이 되고 싶어요’, ‘좋은 선생님이 되게 해 주세요’, ‘경찰 합격해서 자랑스러운 딸이 되자!’. 연예인을 선망하는 청소년들의 심정도 상당수 나타났다. ‘강다니엘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BTS, 트와이스, 연예인 만나게 해주세요’, ‘방탄 만나게 해 주세요’.

개인의 소망을 넘어 사회를 생각하는 내용도 적지 않았다. ‘사회가 균형발전하게 해 주세요’, ‘우리 대구 안전하고, 전쟁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어르신의 담담한 소망도 있었다. ‘세상에서의 모든 아픔은 버리고, 조용하고 행복한 영원의 여행을 감사히 떠날 수 있기를.’.

새해에 바라는 시민들의 모든 소망이 이뤄지길 기원한다. 용학도서관도 이용자들의 소망이 이뤄지는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수 있도록 각종 정보자료와 독서문화프로그램을 제공할 각오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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