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
▲ 오철환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이 통과됐다. 이로써 패스트트랙 법안이 모두 처리됐다. 108석의 국회의원을 보유한 제1야당의 극렬한 반대 속에서도 한건도 누락되지 않은 채 모두 통과된 점이 신기하다. 국회의원 정수의 절반도 안 되는 129석의 여당은 거대한 제1야당의 죽기살기식 저항을 뚫고 목표를 100% 달성한 셈이다.

반면 제1야당은

불법적인 몸싸움까지 불사하며 막아보았지만 빈손이다. 일견 여당의 완승처럼 보이지만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그 과정과 성과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의견을 가진 사람들 간의 갈등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풀어가는 과정이다. 정치의 장을 ‘모여서 의논하는’ 곳 즉 의회라 칭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 뜻에서 보면 의논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통과시킨 법은 국민이 합의한, 민주적 의미의 법이라 할 수 없다. 비록 다수결이 갈등의 최종해결수단으로 기능하긴 하지만 소수의 의견이 존중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결론을 빨리 내는 것보다 제대로 된 성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요체다. 정치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실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전쟁터나 야바위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독단적으로 밀어붙여 정치 실종 사태를 만든 여당이 승리했다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개정된 선거법 중 준연동형비례대표제에 가려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않은 선거연령 만 18세 인하안은 재개정이 필요하다. 만 18세는 우리 학제로 고3이다. 초·중등학생은 생활권이 가정과 학교에 국한되는 비사회인이다. 학생은 성숙한 사회인을 교육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비록 아는 것이 많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문제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할 만큼 사회물정에 밝지 않다. 그런 까닭에 학생은 국가와 사회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

이런 학생들에게 정치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부 교육청이 계획하고 있는 모의선거교육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선거는 교육을 해야 할 만큼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장선거를 통해 익숙한 일이다.

그런데도 모의선거교육을 하겠다는 의도는 불순하다.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학생을 득표수단으로 이용하고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드는 일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만 18세 선거연령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 주장을 하기 전에 학제를 바꾸는 선행조치를 했어야 했다. 현 6·3·3·4 학제를 5·3·3·4 학제로 변경한 연후에 선거연령을 1년 인하하는 것이 순리다. 조숙한 학생이 많아진 상황에서 초등교육기간을 1년 단축해도 큰 무리가 없다.

학제개편이란 선행조건은 건너뛰고 선거연령 인하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벼락치기로 밀어붙인 일은 여당의 정파적 의도라 보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을 도외시한 표 욕심이 교육현장을 갈라놓고 있다.

극심한 혼란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상적인 생각과 진보적인 사고를 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란 가설이 선거연령 인하의 추진 배경이겠지만 학부모 영향하의 학생들이 실제로 그럴 것인지는 미지수다. 학연에 좌우될 개연성이 높아 그 지역 소재 고교 출신 후보자에게 유리한 조건만 만들어 준다. 고교생은 대개 인근 지역에 사는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공정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선거연령 인하 논란을 고령자의 선거권과 연계하여 언급하는 사람이 있다. 정신이 성치 않거나 기능이 떨어진 고령자도 선거권이 주어지는 판에 만 18세는 당연히 선거권을 줘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기본가정을 이탈한 궤변이다. 일인일표주의를 오해한 소이다.

인간 능력의 정량적 평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 차선책으로 채택한 것이 일인일표주의일진대 고령자의 능력만을 문제 삼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인간능력의 정량적 평가가 가능하여 각 개인의 가중치를 계산해낼 수 있다면 그 가중치가 곧 투표 가중치로 적합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인일표제가 그나마 고육지책이다.

교문 앞이 명함 돌리는 필수 코스가 되고 학교 교정이 선거유세장이 되는 불행한 사태를 막아야 한다. 학부모보다 더 연로한 후보자가 교문 앞에 돗자리를 깔고 등·하교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절을 하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선거는 고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연령이 아니라 고교 졸업이란 사건이다. 학생을 선거판 졸로 봐선 안 된다. 유권자의 심판이 두렵지 않는가.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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