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답이’ 정치인은 가라

발행일 2020-01-21 15:26:1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고답이’ 정치인은 가라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푸른 시내 굽이진 곳에 쌓인 돌이 둑이 되어/ 가득히 고인 물이 답답하게 굽이 돈다./ 긴 삽 들고 일어나 막힌 모래 뚫어주니/ 콸콸 흐르는 물결이 우레 같은 기세로다./ 이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조선말 정조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의 20수짜리 연작시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 가운데 하나다. 각각의 시에는 ‘불역쾌재(不亦快哉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라는 후렴구가 붙어있다.

고여 있는 물의 둑을 터준 후에 콸콸 흘러가는 물을 상상해보자. 막힌 가슴을 한꺼번에 뚫어주는 시원함 아닌가.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로 표현하자면 사이다 같은 풍경이다.

‘불역쾌재’와는 정반대되는 뜻의 ‘고답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고구마를 먹다가 목이 메인 것처럼 답답하게 구는 사람을 말한다. 이 말이 ‘고구마 답답이’로 줄었다가 한 단계 더 줄인 것이 ‘고답이’이다.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을 뜻한다. 논리가 없는 사람들을 빗대어 표현할 때도 사용한다. 또 그런 답답한 상황은 ‘고답’으로 표현한다. 방송에서 자막으로 많이 쓰고 있는 시원하다는 의미의 ‘사이다’와 정반대일 때 쓴다고 보면 된다.

‘고답이’의 유래는 아마 TV 드라마일 것이라는 속설도 있다. 드라마에는 주변으로부터 핍박받는 여주인공이 꼭 등장한다. 너무 여리고 착한 여주인공이 말도 안되는 괴롭힘을 꾹 참아내는 장면을 보는 시청자들의 답답함을 ‘고구마 답답이’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요즘은 ‘고답이’의 유래를 정치권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사생결단하듯 여야가 대치하고 서로 고소고발에, 막말에, 감정의 골마저 깊게 패어 갈수록 적대감만 커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고답’ 증상을 보인 국민들이 얼마나 많아졌던가. 민생을 팽개치고 정쟁에만 몰두해 국민들의 가슴을 꽉 막히게 했던 ‘고답이 정치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오죽하면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만 갈까. 하긴 뉴스라고 들어봤자 답답한 소식들뿐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몇 개월째 대립해오고 있는 정치는 앞으로 나아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해가 바뀌어도 경제상황은 더 어려워지고만 있다. 지갑을 꽉 닫은 국민들은 이제 설 연휴 지출 비용까지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천821명을 대상으로 설 연휴 지출 계획을 조사한 결과 평균 41만원을 지출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2018년 44만원, 2019년 43만5천원에 이어 2년 연속 줄어든 액수다.

경제사정은 갈수록 팍팍해지는데 정치권에서는 도무지 이쪽으론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나 몰라라 한다. 오히려 총선을 앞두고 물불 가리지 않고 기선을 잡으려는 고답이 정치인들만 늘어나고 있다. 막장은 드라마에만 있는 것이 아닌가보다. 여야 양대 정당이 막장정치로 극한 대립을 하고 있으니 국민들의 분노와 실망은 커져가고만 있다. 이젠 뉴스만 보면 가슴 답답한 ‘고답’ 증상이 나타난다.

극렬하게 좌우진영으로 갈리다보니 지금은 거의 모든 국민들이 ‘고답’ 증상을 보이고 있다. 보수진영은 여당과 청와대를 보며 가슴 답답해하고, 진보진영은 제1야당을 보며 가슴 막힌다고 한다. 심지어는 ‘집단우울증’을 앓을 지경까지 온 듯하다.

지금 정치권이 해야 할 일들은 국민들의 막힌 가슴을 속 시원하게 뚫어주는 일이다. 막장정치 때문에 생긴 묵은 체증은 정치로 풀어줄 수밖에 없다. 총선을 얼마 앞두지 않은 지금부터는 대립이 더 격화될 것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불통의 사슬을 끊고 상생의 희망이라도 이어가는 모습을 기대한다. 언제부턴가 실종되어버린 대화와 소통이란 단어를 찾는 노력을 보여 달라는 말이다. 출발은 공천과정에서 ‘고답이’ 정치인을 걸러내는 것이다. 이왕이면 여야 가릴 것 없이 이참에 확 물갈이를 해달라는 요구이다. 그래야 국민들의 입에서 “이 또한 통쾌하지 아니하랴”라는 감격의 외침이 터져 나올 것이다.

최소한 그때까지는 정약용의 불역쾌재행 20수라도 읽으며 꽉 막힌 가슴을 다스릴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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