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가 대구·경북에서는 그 정치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지 지역민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가 별로 없이 치러지고 있는 듯하다. 4년에 한 번씩 있는 선거인데도 그렇게 된 것은 그 결과가 오랫동안 특정 정당에 편향된 것을 주된 이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4년 전 있었던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구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정당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두 명을 배출하긴 했지만, 그게 큰 이변으로 불릴 만큼 지역민들의 정치적 선택은 그동안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이뤄져 왔다고 볼 수 있다.

왜 이런 투표 경향이 계속 나타났던 것일까. 그리고 그 결과는 과연 지역에 긍정적으로 작용해 왔던가. 간접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나라에서 국민이 주권자의 권리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는 건 선거가 거의 유일한 수단일 것이다. 그런데 주권자의 투표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면 과연 유권자에게 유리할까, 불리할까. 그 답은 대구·경북에서 그동안 벌어졌던 일들로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선거는 다양한 정치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 각자 정책과 비전을 내놓고 치열한 경쟁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심판받는 것이라고 우리는 배워왔다. 그리고 그게 정상적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대구·경북에서는 어느 때부터인지 이런 정상적인 과정들이 형식적 절차로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유권자의 심판보다 특정 정당의 공천받기가 사실상 선거 결과를 결정 지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보면 대체로 맞을 듯하다.

이런 분위기가 오랜 세월 계속되자 많은 지역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사는 선거구에 누가 출마했는지, 출마자들의 공약이 뭔지, 그리고 그 공약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출마자의 자질과 도덕성이 어떠한지 등, 당연히 챙겨봐야 할 기본적 사항에조차 관심이 없어진 듯하다.

출마자들 역시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금배지가 보장되는 게 현실이기에 자신들의 관심 순위에서 자연스레 유권자들을 뒷순위로 밀어놓은 것 같다. 즉 출마자들에게 유권자들은 더 이상 존재감도 없고, 단지 세력 과시를 위해 있어야 할 겉포장용 표가 된 것이다.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채 석 달도 남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보수통합 논의가 계속되고 있고, 지역정가에서는 자유한국당의 대구·경북 현역의원 물갈이 이슈가 화두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보수통합은 ‘통합해야 한다’는 명제만 내놓은 채 각론에 들어가서는 각 진영의 정파적 이해관계가 맞서면서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지지 않는 모양새고, 자유한국당 물갈이 역시 지역 의원들 사이에 일단 지켜보자는 눈치보기 분위기만 형성되고 있는 모습이다.

보수통합과 물갈이 이슈는 자유한국당이 그 중심에 있어 결국 지역의 공천 문제도, 그것 중 무엇이 먼저 구체화하든지 이와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게 지역정가의 대체적 시각이다.

◆ 자유한국당, TK 물갈이

홍의락(대구 북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얼마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요즘 대구 국회의원이 측은하고 대구의 미래도 걱정된다. 대구는 중앙정치의 자양분으로 전락한 지역 국회의원을 지켜야 하고 중앙 정치의 빨대를 배격할 수 있어야 한다.” “대구 국회의원들의 위상이 이렇게 된 것은 개개인보다는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이 글은 당시 지역 자유한국당 주변에서 흘러나온 대구·경북 국회의원 물갈이설과 맞물리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실제로 자유한국당은 2019년 10월 전국의 현역 지역구의원과 당협위원장 등을 대상으로 조직 관리와 인지도, 평판, 당선 가능성 등에 대한 종합평가를 한 사실이 나중에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지역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종합평가에서 대구·경북 현역 국회의원들의 교체 요구가 전국 시,도당 가운데 가장 높았으며, 또 지역 당원들 사이에서 지역 국회의원 전체를 물갈이해야 한다는 격한 의견도 있었다는 뒷말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지역 국회의원들은 즉각 반발하며,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을 나타내고 불순한 의도가 섞여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총선이 가까워져 올수록 지역 의원들의 운신 폭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지역 여론이 현역 의원 대폭 교체 쪽으로 점점 기울어지고 있는 분위기인 데다, 자유한국당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경북과 함께 자유한국당의 텃밭으로 불리는 부산·경남 의원들의 잇단 불출마 선언은 지역 의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PK에서는 전체 의원(22명) 중 30%에 가까운 중진급 의원 6명이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TK에서는 전체 의원(19명) 가운데 정종섭(대구 동갑) 의원만이 19일 불출마를 선언했을 뿐이다. 곽상도(대구 중-남구) 의원은 “당이 원하면 불출마하겠다”는 ‘조건부 불출마’ 가능성을 언급한 상황이다.

자유한국당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은 21일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은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지만, TK에서 교체가 많이 돼야 물갈이든 판갈이든 된다고 국민들은 볼 것 아닌가, 거기에 맞춰가는 것이 정치”라고 말했다. 이는 대구·경북 현역 의원을 절반 넘게 대거 교체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그는 또 “국민 여망에 부응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숙명이며, 이번에는 할 수밖에 없는,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얼마 전에는 자유한국당 고위 당직자가 “(현역 의원) 30% 컷오프, 50% 물갈이가 예상되지만, TK는 보수 텃밭으로 쇄신 기대치가 높아 50% 컷오프를 점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 안팎의 이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지역정가에서는 결국 자유한국당 대구·경북 현역 의원들은 공천관리위원회라는 타의에 의해 강제적 물갈이가 진행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보수통합 논의 결과가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들린다.

◆ TK 잠룡, 유승민과 김부겸은

보수 진영, 특히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쪽에서는 보수는 크게 보면 모두 하나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 큰 틀을 찬찬히 따져보면 현재 개혁보수니, 중도보수니, 새로운 보수니 하는 정파로 갈라져 있고, 그 통합도 그리 쉽지 않아 보이는 게 현실이다.

각 정파는 자신들이 차별화된 보수이고 국민이 원하는 정통 보수라고 자임하며 자파 주도로 보수통합을 끌어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다가오는 총선이 이들에겐 고민거리다. 주도권 싸움으로 시간을 보내다 지금 같이 보수 진영이 갈라진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면 승산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전 보수 진영의 정당, 시민단체가 대거 참여한 혁신통합추진위원회가 꾸려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지역에서 이 보수통합 논의를 바라보는 관전 포인트 중에는 새로운보수당 유승민(대구 동을) 의원이 있다.

그는 2017년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자유한국당을 탈당하며 친박계와 결별한 뒤, 20대 총선에서는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힘든 선거를 치러야 했다. 그랬기에 그가 보수통합 과정을 통해 TK 지지세를 다시 얻고 차기 대권주자로 재기에 성공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유한국당에 보수 재건 3원칙을 제시한 유승민 의원이 계획대로 보수통합을 통해 새로운 당 간판을 달고 지역에서 출마하게 된다면 지역 정치권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자유한국당이 포함된 보수통합 정당이 새로 출범하고 그 간판으로 지역에서 출마한다면 그에게는 자유한국당 친박계가 씌워놓은 ‘배신자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이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친박계 의원들의 반발도 자연스럽게 해소되리란 예상도 해 볼 수 있다. 여기에 TK 친박계 의원들의 대폭 물갈이가 구체화하고, 그동안 정치 행보를 함께 해 온 측근들의 총선 출마까지 이루어진다면 예상보다 빨리 지역에서 보수 진영의 중심으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탈당까지 하며 새로운 당을 만들었던 그로서는 보수 성향 지역민들은 물론이고, 국민들에게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에 대해 납득할 만한 명분을 보여줘야 한다는 과제가 놓여 있다. 그 역시 이런 맥락에서 총선 승리만을 위해 통합을 위한 통합은 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권주자로 평가받았던 그가 이번 보수통합 과정에서 보여줄 리더십은 그의 정치 역량과 향후 행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TK에서 또 다른 대권주자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 더불어민주당 김부겸(대구 수성갑) 의원이다. 그는 경기도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한 뒤 2016년 고향인 대구로 돌아와 ‘대구 정치 1번지’로 통하는 수성갑에서 31년 만에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다. 특히 자유한국당 텃밭인 TK에서의 당선은 그가 민주당에서 대선주자급 반열에 올라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김 의원의 수성갑 재선은 현재까지로는 이변이 없는 한 무난하지 않겠느냐는 게 지역정가의 대체적 예상이다. 정치적 무게감에서 현재 거론되는 자유한국당 주자들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오는 데다 지역 출신 큰 인물을 내칠 수 없다는 분위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구가 대구라는 점이 민주당 소속인 그에게는 늘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변수가 되고 있다. 4년 전과 달리 여당 의원으로서, 그것도 탄핵 이후 처음 치러지는 총선이라는 점에서 지역 보수층에서 불고 있는 정권 심판론을 어떻게 돌파할지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유한국당에서 언제라도 이곳에 거물급을 전략공천할 가능성이 열려 있어 이래저래 그에게는 이번 선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박준우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 메인사진=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채 석 달도 남지 않았지만, 야권의 보수통합 논의와 자유한국당의 TK 물갈이 이슈가 소용돌이를 치면서 지역 정치권은 현역 의원을 포함해 그 누구도 공천 유력 출마자로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장 모습이다. 연합뉴스
▲ 메인사진=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채 석 달도 남지 않았지만, 야권의 보수통합 논의와 자유한국당의 TK 물갈이 이슈가 소용돌이를 치면서 지역 정치권은 현역 의원을 포함해 그 누구도 공천 유력 출마자로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장 모습이다. 연합뉴스


▲ 서브사진=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20대 국회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최악의 정치를 막고 지금보다 더 나은 정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사진은 ‘2019 유권자 정치 페스티벌’ 퍼포먼스 모습. 연합뉴스
▲ 서브사진=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20대 국회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최악의 정치를 막고 지금보다 더 나은 정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사진은 ‘2019 유권자 정치 페스티벌’ 퍼포먼스 모습. 연합뉴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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