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누가 누구를 축하하는가

누가 누구를 축하하는가

똑 같다. 4년 전 20대 총선을 앞두고 등장했던 수많은 우국지사들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등장했다. 그 개개인의 면면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나라를 구하겠다는 명분만큼은 하나같이 똑 같다. 달라진 것은 그 주체가 바뀐 것이다. 대구로 국한시켜 특히 그렇다.

4년 전 대구에서 나선 인물들은 당시 새누리당 정권을 도와서 박근혜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그랬다. 공천에서 진박 친박 논쟁이 벌어지고 배신과 탄핵의 쓰나미가 덮쳤다.

이번에는 거꾸로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거다. 그들에게 맡길 수 없어 내가 나섰다. 나만이 할 수 있고 내가 해야 한다는 거다.

100년 여 전, 나라가 일제에 먹혔을 때 수많은 우국지사들이 나섰다. 더러는 목숨을 걸었다. 그것이 지도자로서, 지식인으로서, 관리로서 할 수 있는 차선의 선택이었다. 그 때 나라 밖에서는 조선의 망국을 당연한 수순으로 진단하는 학자들이 있었다. 그 중 양계초의 이야기는 따끔하다.

그는 조선이 망한 것을 왕의 무능과 백성의 무지, 그리고 관료들의 사익추구를 꼽았다. 특히 조선의 지배 계급인 양반사회를 지탱하는 관료들은 국가와 백성을 위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안일을 먼저 챙겼다고 그는 지적했다. “조선의 고고한 양반(관리)들은 백성의 상전이 되어 구차하게 눈앞의 안일을 탐했으며 나라가 망해도 나는 부귀하고 편안하다고 하는 자들이다.”

양계초가 조선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망해가는 청나라에 교훈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가 일본에 망명가 있어 왜곡된 조선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깎아내리더라도 그의 식견과 안목이 깊고 넓음에는 동의한다면 참고할 만하다. 그의 눈에 비친 관료들은 늘 붕당을 만들고 음모를 꾸미고 파벌을 만들어 사리(私利)를 도모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심지어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자들도 모두 배운 바를 빌려 관직을 구하는 도구로 삼았다고 비꼬았다. “한일합병 조약이 발표되자 이웃나라 백성들은 조선을 위해 눈물을 흘렸는데 조선의 고관들은 날마다 출세를 위한 운동을 하고 새 조정의 영예스러운 작위를 얻기를 바랐다”고 조선 사회를 분석했다.

그런 양계초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조선인이 있었으니 “무릇 조선 사람 천 만명 중에 안중근 같은 사람이 한 둘 쯤 없지는 않았다. 설령 한 두사람 있더라도 또한 사회에서 중시되지 않는다. 그저 중시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존할 수 없다. 대체로 조선 사회에서는 음험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 늘 강하고 번성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100년 전 이야기고 조선을 잘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흘려버리기에는 너무 아픈 대목이다.

지금 총선에 나선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정말 대단한 스펙들이다. 어떻게 보면 한 세상 잘 살아왔던 사람들일 수도 있다. 짧게는 10여 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 국가직으로 또는 공공부문에서 봉사하는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보수도 두둑이 받았을 것이고 연금도 꼬박꼬박 챙기는 관료 말이다. 그런데도 또 더 해먹겠다는 것 아닌가. 그들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바치겠다는 것인지. 혹시 양계초가 100년 전 본 것처럼 자신의 출세와 안일을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 내려오시라.

공직자 사퇴 시한전까지 선관위에 등록한 총선 예비후보 중 문재인 정부에서 공직을 지낸 인물만도 134명이었다. 지금 대구·경북 25개 선거구에 등록한 예비후보만도 174명이나 된다. 덕분에 호텔과 컨벤션센터도 반짝 호황을 맞았다. 그들의 출마 회견장으로. 그들은 거기에서 화려한 이력을 과시했다. 정치인과 관료들 그리고 입김 있는 유력인사들뿐 아니다. 지역의 온갖 명함을 가진 이들이 줄을 서서 축하하느라 장마당이 됐다.

누구를 축하하기 위해 줄을 섰던가. 아니면 누구의 눈도장을 찍기 위한 보험가입장인가. 이 무슨 주객전도의 현장인가. 설마 지난 세기 관존민비 사상의 유전자가 선거철을 해빙기 삼아 준동한 것인가.

유권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한 명의 고액봉급자를 만들어낼 뿐이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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