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 / 이호우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아려 눈을 감네

-시조집『개화』(태학사, 2001)

시조는 우리의 호흡과 정서, 사상과 감정을 담기에 가장 알맞은 시의 그릇이다. 일정한 형식이 있어서 정형률이 시상을 전개하는데 제약을 줄 수도 있지만, 기량을 갖추게 되면 정형 속에서 얼마든지 자유로움을 구가할 수 있다.

이호우는 경북 청도 출생으로 경성제일고보를 수료하였고, 1941년 이병기를 통해 《문장》지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이호우 시조집』과 『휴화산』등을 남겼으며 그의 시조 세계를 ‘살구꽃 서정과 깃발의 힘’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서정적인 세계와 더불어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일에도 큰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개화」는 단시조다. 단시조는 시조의 본령이다. 그러나 「개화」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전개 양상을 보여주면서 존재론적 탐색을 통해 자아의 정체성이나 미적 상황을 구현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자연물을 대상으로 하되 그 안에 실존적 자아가 투영되어 자아 즉 정의 세계화, 세계 즉 경의 자아화를 통해 서정시의 본질을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생명의 비의를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개화」는 이호우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한 하늘이 열리고 동시에 시인의 눈이 열린다. 마지막 고비를 맞자 바람과 햇볕이 숨을 죽이고 나도 아려서 눈을 감는다. ‘아려’도 원래는 ‘가만’이었는데 워낙 완벽을 기하는 퇴고를 거듭했기에 말년에 수정한 것이다. 이 시조는 그러한 전개 과정을 통해서 생명의 경이로움을 노래한다.

꽃이 피는 것은 존재의 확대다. 그리하여 한없이 순수하고 한없이 아름다운 한 송이의 꽃에서 이상 세계의 실현을 보고 그 감격 때문에 무한한 환희와 법열을 느끼게 된다. 그런 까닭에 꽃이 한 잎 한 잎 필 때마다 한 하늘이 열린다고 했으리라. 중장에서 미묘한 정서적 길항작용을 일으키는 ‘마침내’와 ‘마지막’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이 시조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데 이바지하고 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남은 한 잎이 떨고 있는 고비에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더 이상의 말이나 행위가 필요치 않았기에 ‘나도 아려 눈을 감’게 된 것이다. 묵상하는 모습, 정밀이 흐르는 황홀한 순간이다. 여기서 ‘바람’과 ‘햇볕’이 병치된 점이 이채롭다. 문장 끝을 ‘피다, 있다, 죽이다, 감다’로 진술하지 않고 김소월의 「산유화」처럼 ‘네’로 끝맺고 있어 리듬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이호우는 ‘여기 한 사람이/ 이제야 잠들었도다// 뼈에 저리도록/ 인생을 울었나니// 누구도 이러니저러니/ 아예 말하지 말라’라고 「묘비명」이라는 단시조에서 읊은 적이 있다. 남긴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모두가 주옥편이다. 진실로 ‘뼈에 저리도록’ 조국을 두고 울고 시조를 두고 애간장 끓이며 심혈을 다했던 시인이다. 그가 누구든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가 없음을 「묘비명」을 통해 다시금 절감한다.

이제 머잖아 이 땅에 다시 봄은 오고 꽃이 필 것이다. 땅에서 꽃이 필 때 저 광대무변의 궁창이 한 하늘을 열어젖힐 것이다. 그때 봄을 맞은 이들의 눈에도 새로운 한 하늘이 열려 말로 다 못할 기쁨의 순간은 온 누리에 도래하리라. 이정환 (시조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