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에 관한 고찰 / 최영효

1.백무동 첫물이 물안개 뚫고 내리며 무연한 참꽃 마주쳐 곁눈으로 훔치다 헛디딘 발목을 끌고 바위에 미끄러지는 소리

2.처마 낮은 지붕 아래 다 저녁 내릴 무렵 시집간 첫째 딸이 손자 안고 들어설 때 앉혀둔 찰옥수수가 솥뚜껑 여는 소리

3.가을볕 목덜미에 잔광이 빌붙기 전 콩이야 팥이야 하늘 바라 말리는 시간 깻단이 성질 못 참고 제물에 터지는 소리

시조집 『노다지라예』 (목언예원, 2014)

최근 시조문단은 풍성해져서 읽을거리들이 많다. 발표 지면이 늘어난 점도 있지만, 좋은 작품을 쓰는 시인들이 그만큼 많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눈매 매서운 고급 독자는 군계일학을 찾으면 무릎을 치며 반기게 된다.

최영효 시인의 ‘웃음에 관한 고찰’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눈여겨보아야 할 작품이다. 웃음이 귀한 시절에 슬그머니 웃음을 안겨준다. 그러나 그 웃음이 금방 나오지는 않는다. 새겨 읽지 않으면 시의 화자의 의도를 수월하게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시된 세 가지 장면의 미학적·정서적 정황을 면밀히 머릿속에 그려보아야 한다.

먼저 첫 수에서 ‘백무동 첫물’이 ‘무연한 참꽃’을 곁눈질하다 그만 발목을 헛디디어 바위에 미끄러지는 사태를 그리고 있다. 그것이 왜 웃음을 주는가 하고 반문하는 이가 있다면 이 작품을 깊이 읽지 못한 것이리라. 둘째 수에서는 ‘다 저녁 내릴 무렵 시집간 첫째 딸’이 손자 안고 들어설 때에 맞추어 ‘앉혀둔 찰옥수수가 솥뚜껑 여는 소리’가 들린다.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다. 셋째 수에서는 콩과 팥 등을 말리느라 분주한데 생각하지도 않은 ‘깻단이 성질 못 참고 제물에 터지는 소리’를 낸다.

독자는 또 생각한다. 이러한 전혀 다른 정황의 세 장면이 연출하고 있는 것과 웃음이 무슨 연관이 있는가 하고. 물론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시적 시각으로 새로운 시의 한 경지를 연 것은 몹시 놀라울뿐더러 웃음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혹은 깊은 사유의 세계와는 하등 관계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불쑥 내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진종일 일에 시달려서 혹은 사람에게 부대끼다가 한 번도 얼굴에 미소를 지어본 적이 없이 지낸다면 그것은 옳은 사람살이가 아닐 것이다. 늘 고개 숙이고만 걷다가 제대로 하늘 한 번 마음껏 올려다보지 못한 채로 살고 있다면 그것 역시 옳은 삶이 아닐 것이다. 여유를 가지고 푸른 하늘을 자주 우러르고, 이웃들을 만나 유쾌하게 소리 내어 웃으면서 얼굴을 마주한다면 삶의 활력이 되살아나지 않겠는가. 시인이 오죽하면 제목을 ‘웃음에 관한 고찰’이라고 소논문 제목처럼 무겁게 달았을까? 정말 ‘웃음’은 고찰을 해볼 만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웃음에 관한 고찰’이 보여주는 미묘한 소리의 사태 앞에 슬그머니 미소를 머금게 될 때 우리 삶은 한 단계 더 성숙해지리라 믿는다. 이정환(시조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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