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돼지 사이클과 마스크대란

발행일 2020-02-05 09:38:0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돼지 사이클과 마스크 대란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더 된 사마천의 사기 중에는 상업과 공업을 중심으로 부자가 된 인물들을 다룬 화식열전이 있다. 이 중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월나라 책사인 범려가 왕인 구천에게 경제에 관해 간언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물가를 조정하고 시장에 물건이 부족하지 않게 하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입니다. 물자를 모으는 이치는 물자를 온전히 보전하는 데 힘을 쓰되 묵혀서도 안 되며, 값이 오를 때까지 차지하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재물과 화폐는 물 흐르듯 돌게 해야 합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시장 수급을 잘 조정하되, 매점매석과 같은 부정적인 방법을 통한 폭리를 예방하는 등 시장의 순기능을 원활히 하는 것이 부국강병의 길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월나라 왕 구천은 10여 년에 걸쳐 범례의 간언을 실천한 결과, 나라는 부강해지고 당시 경쟁국이었던 오나라와의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웬 사기(史記) 이야기냐고,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부르는 게 값이 될 정도로 특수를 누리고 있는 마스크 시장을 보니 범려의 간언이 생각나서 하는 말이다. 국내 마스크 시장은 뭉텅이 돈을 싸 들고 와서는 공장 앞에 진을 치고 대규모로 싹쓸이해 가려는 중국 상인들이 몰려오고, 이때다 싶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폭리를 취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가격 불안이 조장되고 있다. 여기에다가 마스크 제조용 원자재인 중국 부직포 원단의 공급마저 원활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더해져 마스크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그가 살아있다면 분명 비분강개해서 관련된 자를 엄벌하도록 간언했을 것이고, 사태는 조기에 진정되었을 것이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종종 시장에서는 이처럼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하면 단기적인 품귀현상과 함께 가격 급등 현상이 발생하거나 유사 저질 상품이 등장해 시장질서를 파괴하고 각종 피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통상 시장에서는 특정 상품의 가격이 갑자기 상승하면 소비 자체가 줄거나 대체재로 수요가 전환되면서 가격이 안정화되는 이른바 돼지 사이클(Pork Cycle)이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조류독감, 돼지열병 등이 유행했을 당시를 떠올려보자. 단기간 닭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일시적으로 급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닭고기와 돼지고기가 상호 대체재로 작용하거나 소비가 줄면서 시장은 비교적 단기간에 수급과 가격 균형을 되찾았다.

하지만 지금 마스크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일반적인 돼지 사이클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는 극심한 투기현상으로 절제되지 못한 일부 사람들이 인명을 담보로 한 물욕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법제도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초단기간에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면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다만, 이번처럼 전 세계가 전염병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엄청난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에 충실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식용유, 참기름, 경유, 휘발유, 분유 등 시장이 불안정해질 때마다 수많은 가짜가 득세했고 위기 상황에서 라면이나 생수 등 생필품 사재기가 종종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스크 등 매점매석 행위 금지 고시와 긴급 수급 조정조치와 같은 정부 차원의 대응책이 오늘부터 추진된다는 점이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영리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역기능이 만연한 시장의 정상화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지만, 공포에 사로잡힌 시장을 단기간 내 안정시키기에는 정부 정책만큼 강력한 것도 없다.

아울러 소비자들도 어서 빨리 영민함을 되길 바란다. 이제 더는 가짜와 폭리가 시장에서 막춤을 추지 못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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