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김훈

제목인 화장은 화장(化粧)과 화장(火葬)을 교묘하게 버무린 것으로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단번에 합성시킨 절묘한 장치다. 소설 〈화장〉은 비장할 정도로 잔혹하다. 사그라지는 여체의 적나라한 묘사는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다. 싱싱한 여체에 대한 자제력은 오히려 여운을 길게 남긴다. 별다른 기복이나 드라마틱한 전환이 없는데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간다. 작가의 상상력은 실존적 의미와 형이상학적 세계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치밀한 설계와 탄탄한 문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주인공 ‘나’는 국내 제일의 화장품회사 실세 상무다. 오 상무는 오십대 중반의 나이지만 도뇨관에 의지해 소변을 봐야 할 정도로 심각한 전립선염에 시달린다. 아내는 뇌종양에 걸려 2년 동안 세 번의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투병하고 있다. 아내는 잡지사 여기자였다.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대학원을 다녔다. 화장품회사 말단사원으로 취직해서 상무까지 승진한 배후에 내조가 없었다 할 수 없다.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10억짜리 단독주택에 살고 있으니 그런대로 잘 풀린 삶이다. 5년 전 입사한 여사원, 추은주를 마음에 두고 연모한 걸 제외하면 부부 금슬도 나쁘지 않다. 투병 중인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성실히 간호하고 정성껏 뒷바라지하였다. 몸이 추악하게 변하고 선똥을 수시로 지리는 아내를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손수 목욕을 시켜주기도 했다. 추은주에 대한 연모와 욕망으로 헛된 상상에 사로잡히긴 했지만 글로써 뜨거운 감정을 애써 달랬다. 추은주를 여신으로 상정하고 3인칭 경어체 글을 쓰는 까닭도 주체할 수 없는 욕정을 다스리려는 눈물겨운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수치심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아내는 죽음에 온순히 투항했다. 아내가 키우던 개도 안락사 시켰다. 딸은 약혼자를 따라 뉴욕으로 떠났고, 여신 추은주는 회사를 사직하고 외무공무원인 남편과 함께 워싱턴으로 갔다. 그동안 고심해왔던 광고콘셉트도 ‘가벼움’으로 정리되었다. 그날 밤, 오 상무는 모든 의식이 허물어져 내리고 증발해버리는, 깊고 깊은 잠을 잤다.

진화 이전의 본능은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한다. 규범과 도덕률로 촘촘하게 짜인 질서에 쉽게 길들여지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끌림을 뿌리치지 못하고 욕망에 따라 일탈하기도 한다. 수컷이 처음 보는 싱싱한 암컷에게 눈이 가지 않으면 죽을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오 상무라 해서 예외일순 없다. 정신은 몸에 얽매이지 않은 지라 자칫하면 감당하지 못할 과욕을 부리기 십상이다. 극심한 전립선염으로 여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선 눈길은 가고 마음은 타오르지만 마냥 본능을 쫓을 계제는 아니다. 여신은 어쩌면 대체재다. 무거운 몸이 도뇨관으로 소변을 배출하여 가벼워지듯 시든 얼굴은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여 가벼워진다. 화장품 광고 콘셉트가 가벼움으로 가는 이유다. 여신으로 연모한 추은주도 가고 아내의 화신인 딸도 간다. 세월의 어둠과 무거움을 화장으로 가려 밝음과 가벼움을 잠시 누릴 수 있지만 결국 어둠과 무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화장될 운명인 것이 인생이다. 생산능력이 있는 여신과 딸이 햇빛 아래 빛나는 삶의 표상이라면 뇌종양에 쓰러진 아내와 전립선염에 시달리는 오 상무는 묵직한 죽음의 실루엣이다. 세월에 어찌 맞서랴.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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