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존엄의 굴레’



“…시신을 자연으로. 매장도 벌레에게…”

오철환

…주인공 ‘나’는 퇴직 공무원이다. 아들을 부정 취업시킨 일이 드러나 정년을 불과 1년 앞두고 파면되었다. 내가 받은 충격도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아내와 어머니가 받은 상처도 컸다. 아내는 가까이서 눈치 보느라 오히려 의연해보였으나 연로한 어머니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머니는 불심으로 아픔을 극복하고자 했다. 나는 불심이 희미했지만 어머니를 따라 불공을 드리려 가야했다. 절에서 인연 큰스님을 면담하고 정신적 치유를 받았다. 큰스님의 설법을 듣고 윤회사상에 대해 호감을 가졌다. 티베트의 장례인 천장은 불교와 윤회사상에 충실하다. 천장을 현대적으로 업그레이드 한 소위 ‘몸보시장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는 사체를 환약의 형태로 가공하여 동물에게 주는 ‘몸보시’이자 장례다. 처음 들었을 땐 끔찍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람직한 친환경 장례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어쩌면 장례가 가야 할 최종 지향점이다. 나는 큰스님의 권유로 티베트불교에서 주도하는 ‘몸보시장례 확산운동’에 적극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이 운동은 벌써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나는 큰스님과 인근도시에 있는 티베트인들이 운영하는 환약제조장을 견학했다. 기증받은 사체를 환약형태로 만들어 동물들에게 사료로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막상 공장을 견학해보니 섬뜩했다. 관습과 선입견이 견고했다. 큰스님의 권유로 나는 윤회불교추진위원회 기획실장을 맡았다. 신흥불교 등록을 준비하던 중 경찰의 소환을 받았다. 사체의 훼손, 유기, 영득 등에 대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나는 그냥 참고인 진술만 하고 풀려났다. 인간의 존엄이란 것이 죽고 난 후에도 그 사체 안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티베트의 천장(天葬)이나 수장(水葬)은 끔찍하고 미개한 장례풍속으로 알려져 있다. 천장(또는 조장)이란 시신의 살점을 떼어 새의 먹이로 주는 장례다. 수장이란 전염병 등으로 죽은 사람들이나 애들의 시신을 강물이나 호수에 버려 물고기 밥이 되게 하는 것으로 천장의 보조수단이다. 뼈도 잘게 빻아 보릿가루와 섞어 독수리에게 준다. 생전에 남의 살을 먹고 살았으니 죽어서는 배고픈 동물들에게 시신을 돌려준다는 의미다. 영혼이 떠난 육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극락왕생한다고 한다. 천장이 고귀한 생명사랑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시신을 냉동하거나 뜨거운 불에 태우는 것은 괜찮고 다른 생명체의 피와 살이 되도록 보시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불경이라고 여기는 것은 일종의 편견이다. 로봇이나 기계를 이용하여 시신을 가공하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인간은 동·식물을 식재료로 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어왔다. 이젠 자연생태계에 되돌려주는 일도 고민해야 한다. 불필요한, 어쩌면 골치 덩어리인 시신을 은혜 입은 생명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과연 끔찍한 일일까. 껍데기에 불과한 시신을 생태계에 온전히 되돌려주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매장도 결국 벌레의 먹이로 내주는 것이고 화장도 시신을 불태우는 것이니 동물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하여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도 같다. 물론 낯선 탓인지 아직 썩 내키지는 않지만.

국토가 무덤으로 뒤덮이고 납골당이 부족하다. 자연친화적이고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장례를 연구해야 할 때다. 이 문제는 종교적 차원에서 그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거부감이 적을 것이다. 자비와 사랑은 모든 종교의 근본교리다. 하늘나라로 가기 위한 실천원리로 자연친화적인 장례문화를 연구·보급하는 일은 어쩌면 종교의 본래적 사명일 지도 모른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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