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나무

서지월



숲속의 나무는 바람이 불어와도 / 그냥 흘려 보냅니다 숲속의 나무는 비가 와도 / 그대로 흘려 보냅니다 / 숲속의 나무는 내가 누구인가를 모릅니다 / 숲속의 나무는 잎을 달아 노래하고 / 꽃을 달아 호젓이 명상하다가 / 열매를 피워 스스로의 무게를 가늠해 볼 뿐 / 지나가는 산토끼나 다람쥐 그들을 / 그대로 있게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 모르는 숲속의 나무는 그대로 선 채로 / 낮에는 햇빛 먹고 밤에는 / 달빛 먹고 살아갑니다 아득히 먼 / 별빛 우러러 숲속의 나무는 / 하늘의 뜻 알아차리고 흐르는 물소리로 / 땅의 기운 알아차립니다 / 내가 누구인가를 모르는 숲속의 나무는 / 조금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서지월시집 『나무는 온몸으로 시를 쓴다』 (고요아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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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시인의 순수한 내면세계를 상징한다. 속세를 벗어난 호젓한 숲속에서 새소리에 마음을 열고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햇살을 바라고 구름과 사귀며, 비를 피하지 않고 바람도 받아들인다. 숲속의 나무는 자연 속에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스스로 없는 듯 존재한다. 현실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시인은 숲속의 나무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시인이 곧 나무이고 나무가 곧 시인이다. 속세와 서먹서먹한 시인은 아름답고 청징한 나무가 되었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 쏟아져도 아랑곳없이 다 내려놓고 무욕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무소유무욕에 다름 아니다. 존재를 잊고 생각의 범주마저 벗어난다. 무념무상이고 물아일체다. 나뭇잎이 돋아나면 그 잎으로 노래하고 꽃이 피면 그 꽃을 달아 명상에 잠긴다. 열매를 맺으면 지나가는 산토끼나 다람쥐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원래 내 것이라 할 수 없으니 가져간들 어떠리. 햇빛에 만족하고 달빛에 감사하는 나무는 시적 영감으로 가득 찬다. 별빛만 봐도 하늘의 뜻을 알아차리고 흐르는 물소리만 들어도 땅의 기운을 느낀다. 염화미소에 이심전심이다.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 나무는 순수의 정수다.

시인은 욕심과 증오로 가득 찬 인간과 이별하고 숲속으로 떠난다. 비리와 부조리에 매몰된 세상과 담을 쌓고 시인은 나무가 된다. 나무가 된 시인은 이제 온몸으로 시를 쓸 뿐이다. 나뭇잎과 꽃잎과 열매는 향기로운 시가 되어 지나가는 바람에 시심을 실어 보낸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은 시를 노래하고 떨어지는 낙엽도 시에 취한다. 마음껏 나누어도 시심은 줄어들지 않는 화수분이다.

나무는 끝없이 베푸는 존재다.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산소를 공급한다. 테르펜이나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나무는 이타적인 생명체의 모범이다. 온갖 동식물에 보금자리를 내어주고 열매와 잎사귀를 먹이로 내놓기도 한다. 살아서 나눔을 실천하는데 그치지 않고 죽어서도 남김없이 보시를 실천하는 보살이다. 집과 가재도구를 만드는 목재로 변신하여 우리 삶을 기름지게 하고 몸을 태워 추위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기도 한다. 그러고도 잘난 체하지 않는 겸양은 가히 신의 경지라 할만하다. 신이 창조한 생명체 중에 최고의 작품은 나무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신이 당신을 닮은 생명체를 창조하셨다면 그건 아마 인간이 아니라 나무일 것이다. 신이 가장 사랑하는 생명체가 인간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이 인간처럼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라는 의미다. 생명이 윤회한다는 불가의 가르침이 사실이라면 다음 생엔 깊은 숲속의 볼 품 없는 한그루 나무로 환생하고 싶다. 서지월 시인이 나무가 된 사연은 충분히 이유가 있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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