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

우은숙

저, 도도한 앉음새에 타협은 없었다/ 옹골찬 모습엔 흩뜨러짐도 없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단호함만 있었다.

그러나 한 걸음에 달려온 햇빛 소나기/ 그 눈부신 절정이 창문을 투과하자/ 견고한 각진 얼굴이/ 순해지네/ 느긋해지네.

꼿꼿한 경계가 풀려난 그 자리/ 모난 것도 둥근 것을 품고 살았구나/ 몸 안에 잔물결 이는 그곳/ 딱딱하다가/ 말랑한.

-시조집 『그래요, 아무도 모를 거예요』(시인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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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은숙은 강원도 정선 출생으로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마른 꽃』『물소리를 읽다』『소리가 멈춰서다』『그래요, 아무도 모를 거예요』『붉은 시간』(고요아침 현대시조 100인선 18번, 2016) 등과 평론집 『생태적 상상력의 귀환』이 있다. 날마다 매운 혀를 낮달 속에 구겨 넣고 싶은 마음으로 시조 창작의 길을 걷고 있는 시인이다.

사람들은 이따금 모서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상 속에서 자주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 모서리에 뜻하지 않게 부딪쳐서 몸에 멍들거나 상처가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부주의한 자신을 자책하기도 한다.

왜 하필이면 그 순간 조심하지 않았지 하면서 삶 속에서 모서리와 같은 각지고 거친 존재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만큼 모서리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필요한 모서리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때로 대적하기 힘든 무기가, 적이, 매서운 눈총이 되어 우리를 위협한다.

‘모서리’는 그런 착상 끝에 생산된 세 수의 연시조다. 첫수 저, 도도한 앉음새에 타협은 없었고, 옹골찬 모습엔 흩뜨러짐도 없었지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단호함만 있었던 것을 독자의 뇌리에 각인시킨다. 그렇다. 도도하기에 타협이, 옹골차기에 흩뜨러짐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모서리에게는 범접치 못할 단호함만 있어서 가까이 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러한 모서리에 변모가 일어난 것을 둘째 수는 알려주고 있다. 한 걸음에 달려온 햇빛 소나기가, 그 눈부신 절정이 창문을 투과하는 순간 견고한 각진 얼굴이 순해지고 느긋해지는 것을 화자는 눈여겨보고 증언한다. 꼿꼿한 경계가 풀려난 그 자리를 보면서 모난 것도 둥근 것을 품고 살았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몸 안에 잔물결 이는 그곳을 체감하고 딱딱하다가 말랑말랑한 성정까지 읽어낸다.

우은숙의 ‘모서리’에서 인생의 의미를 재발견한다. 외유내강이라는 말과 더불어 외강내유를 생각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드러워 보여도 내면이 강골인 사람도 있고, 반면에 겉이 강한 듯 보여도 그 속은 한없이 여린 이도 있다. 모서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타인에게 상처 주기 쉬워 보여도 외려 그 속은 여려서 도리어 상처받기 쉬운 한 자아를 떠올리게 한다.

시는 놀라운 발견이자 자각이고 성찰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풍경과 내면을 아우르면서 언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때 한 편의 시는 미학적 자기장을 형성하면서 감동을 안기게 된다.

‘모서리’는 모서리라는 비근한 소재를 텍스트로 삼아 한 편의 진지한 인생담론을 들려주고 있다. 우리는 존재론적 성찰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견인할 힘을 얻는다.

모난 것도 말랑말랑하고 둥근 것을 품고 산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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