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이 주는 진부한 교훈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비롯한 4개 부문에서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예술성을 중시하는 칸과 상업성에 민감한 아카데미를 동시에 장악한 쾌거였다. 비영어권에서 영어 더빙도 없이 명품 영화로 평가받았다는 점은 기적이다. 인구 오천 만에 불과한 분단국가에서 영화계를 놀라게 한 일들이 잇따르고 있어 우리 민족의 저력을 새삼 돌아본다. 드라마 ‘대장금’이 해외에게 선풍적 인기몰이를 해서 놀란 일,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욘사마 열풍을 불러일으킨 일,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몇몇 한국영화인들이 잊을 만하면 유명 영화제 수상소식을 전해온 일 등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한국영화 아카데미 석권의 전주곡쯤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실과 잘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확인해준다.

한국적인 것이 경쟁력을 갖는다. 남과 다른 걸 발굴하고 다듬는 것이 세계시장에서 먹혀드는 비결이라는 뜻이다. 비단 자랑스러운 부분에만 한정되진 않는다. 한국적 현상이 부끄러운 치부라 하더라도 숨기는 게 능사는 아니다. 정면으로 맞서서 승부를 걸어야 가능성이 열리는 법이다. 빈부격차, 사교육, 분단과 이념 분쟁 등에 기인하는 한국적 부조리와 모순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해부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치유하는 첩경이다. 세계인의 공감과 공조를 이끌어 내는 것은 덤이다.

우리나라는 유독 예술분야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음악계는 누구를 먼저 들어야할지 모를 정도로 거장들이 쟁쟁하다. 작곡가 안익태와 윤이상,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강동석,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조성진, 첼리스트 장한나, 소프라노 조수미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즐비하다. 비단 클래식 분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세계인에게 ‘말춤’을 추게 했던 ‘강남 스타일’의 싸이, 매순간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는 K-팝의 BTS 등 대중음악도 클래식 못지않다. 미술계도 만만찮다.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백남준과 모노파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한 이우환 등 이름을 다 거명하자면 끝이 없다.

우리 민족의 예술본능은 아무래도 내림일 가능성이 크다. 진수의 ‘삼국지위지동이전’이나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보면 당시 우리 민족의 두드러진 예술본능을 발견할 수 있다. 부여에서 삼한에 이르기까지 어느 지역 가릴 것 없이 ‘가무를 즐겼다’, ‘가무백희’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예로부터 춤과 노래에 끼가 많았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예술적 DNA가 끊이지 않고 대대로 전승된 셈이다. ‘흥’이라든가 ‘신명’이 타고난 고유의 정서라는 주장이 빈말은 아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노래도 그런 범주일 수 있다.

우리 핏속에 녹아있는 우리만의 재능을 발굴하고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각자의 소질을 개발하는 일이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는 생존전략이다.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지극히 진부한 상식이다. 그런 이유로 오히려 간과하거나 소홀히 하기 쉽다. 대부분 공부로 승부하려고 버둥거린다. 책만 보면 경기하는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한다. 사농공상의 뿌리 깊은 유교적 가치관 때문일 수 있다. 다가오는 미래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시대가 아니다. 잘못된 편견이나 선입견은 과감히 청산해야 할 때다. 자식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길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재능에 맞고 선호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목줄을 풀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미와 배짱이’ 우화를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모두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야만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게 현대적 버전으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개미와 같이 성실한 품성을 가진 자는 열심히 일 해야 하겠지만 배짱이 같이 노래하는 걸 즐기는 자는 그에 맞는 길로 인도할 필요가 있다. ‘기생충’의 대박이 엉뚱한 곳에서 재능을 썩히는 사람들에게 ‘인생엔 다양한 길이 있다’는 교훈을 주었으면 한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도 흘려들어선 안 된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는 결말을 알고 있지만 토끼처럼 급히 뛰는 사람이 많다. 급히 뛰면 피로가 쌓이고 피로가 쌓이면 쉬어야 하는 것이 정한 이치다. 급히 뛰면서 자기만은 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을 감안하여 완급을 조절하고 쉴 때는 쉬어가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만족스러운 성과를 낼 수 있다. 봉준호 감독도 단번에 단상에 뛰어올라 대박을 터트린 건 아니다. 봉준호가 여러 곳에서 우후죽순처럼 나오길 바라며.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