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코로나19’가 사람들의 생활 패턴에 영향을 주고 있다. 바깥출입이 잦고 외부인을 많이 만나던 사람들도 외출을 자제하고 일찍 귀가한다. 일부 사람들은 평일과 휴일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종전과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집에서 TV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말하고, 또 일부 사람들은 책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고도 한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주어진 시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처럼 독서를 통해 지적인 희열을 맛보게 되어 좋다고 말한다.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인간의 행불행은 결정된다. 밀폐와 폐쇄, 유배와 고립, 권태와 단조로움도 거기에 대응하는 사람에 따라 그 시간의 용도와 가치는 달라진다.
페트라르카와 함께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토대를 마련한 조반니 보카치오는 속어인 이탈리아어로 쓴 문학 작품을 고대 고전문학의 반열에 들게 한 작가다. 그가 쓴 ‘데카메론’은 1348년 이탈리아를 강타한 페스트가 피렌체까지 이르게 되었을 때 교회 미사에 참석했던 7명의 귀부인이 3명의 신사를 초대하여 전염병이 잠잠해질 때까지 교외의 별장에 은둔하기로 결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0명의 남녀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매일 한 가지씩 10일 동안 순번을 정해놓고 이야기를 지어내 도합 100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단테의 ‘신곡(神曲)’이 신의 도리를 보여준 작품이라면, ‘데카메론’은 인간의 본능과 악덕, 허위 등을 폭로하는 ‘인곡(人曲)’이라고 일컬어진다.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자발적인 격리와 단절의 환경 속에서 나왔다.
대구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 동선이 공개되고 크고 작은 행사들이 잇달아 취소되고 있다. 보건당국은 개인위생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나와 내 가족이 안전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현명한 행동 방침에 대한 생각과 함께 이 폐쇄와 고립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모두는 삶을 마감할 때까지 앞으로도 여러 번 크고 작은 재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고통스러운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과 생활방식에 대해 다양한 성찰을 하게 된다. 개발독재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너무 외향적이고 떠들썩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이제 내 가정, 가까이 있는 이웃, 친지를 중심으로 소박하게 사는 삶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인 ‘소확행’의 추구와 지적인 삶, 외양의 화려함보다는 내면의 깊이를 탐색해 본다면 이 움츠림과 위축의 시간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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