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 현장을 가다 (56) 예천 회룡포장수진품

발행일 2020-02-26 18: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2대를 이어 된장과 참기름을 만드는 된장녀와 고소남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된장으로 우리 식품의 우수성을 알린다.

저온압착식으로 착유하는 참기름으로 식탁에 고소한 맛을 올리는 강소농

박명희 대표가 마당에서 된장 항아리를 열어 보이고 있다. 수시로 된장 항아리를 열어보고 정성을 들여서 관리한다.
우리 조상은 장(醬)을 중하게 여겼다. 된장과 간장은 음식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조선 최고의 미식가였던 ‘허균’이 지은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에 그 사례가 실려 있다.

임진왜란에 이어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선조의 몽진이 또다시 거론된다. 평안도 영변이 거론되자 ‘남이공(이조판서 역임)’이란 신하가 ‘그곳은 장맛이 시원찮으니 합장사(合醬使, 임금이 몽진을 하면 미리 가서 장을 담그는 책임자)를 미리 보내야 한다’면서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신잡(임진왜란 2등 공신)을 추천했다.

박명희·고재훈 공동대표가 3년간 숙성시킨 된장의 상태와 맛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앞을 관리 방안을 의논하고 있다.
다른 신하들이 성이 신씨(申氏)이라 장 담기를 피하는 날인 신일(辛日)과 음이 같아 신불합장(辛不合醬, 신일에 장 담그기를 피하는 일)이라 좋지 않다고 했다. 이것을 보면 장 담그는 일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가를 알 수 있다. 장은 십이간지 중에서 일곱 번째인 오(午)일에 담근다. 즉 말 날(馬)에 담근다. 말의 강한 기운을 담고자 한 것이다. ‘음식 맛은 장맛’이라고 할 정도로 장을 담그는 일에 신경을 썼다.

박명희 대표가 항아리에서 꺼낸 3년 숙성된 된장을 보여주고 있다.
장은 음식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조미료다.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칠 때는 물론 생선을 조릴 때도 들어간다. 예천에서 부모님이 운영하던 장류사업을 이어받아 전통식품을 만드는 청년 강소농이 있다. 된장과 간장 선식을 만들고 참기름과 들기름을 짜서 연간 2억 원의 소득을 올린다. ‘회룡포 장수진품’의 고재훈(38)·박명희(38) 공동대표가 주인공이다. 회룡포장수진품은 육지 속 섬마을 회룡포 옆에서 진짜배기 된장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은 농장이름이다.

회룡포장수진품의 항아리, 된장과 간장이 담겨져 있다.
◆ 농산물 가공 가치를 알아본 청년부부의 귀농

32살의 동갑내기 부부가 어느 날 된장을 만들겠다고 농촌에 들어왔다. 주위에서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왜?’ 하는 표정으로 1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부모님은 미소를 지었다. 농산물 가공의 부가가치를 일찌감치 알고 2005년부터 된장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명희·고재훈 공동대표가 3년간 숙성시킨 간장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힘들게 콩 농사를 지어서 헐값에 상인들에게 넘기는 것이 안타까워했었다. 그때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촌여성일감찾기사업으로 된장을 만들어 보라는 제안을 받아 시작했다. 된장을 만드는 데는 자신이 있었으나 판매에 어려움을 겪던 차에 아들 부부가 합류하자 반겼다.

박명희·고재훈 공동대표가 권훈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전문위원으로부터 간장의 보관 방법과 염도관리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고 대표는 양잠협동조합에서 누에를 활용한 건강식품을 가공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농산물 가공이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박 대표는 유치원 교사로 된장을 만드는 일은 생소했지만 부모님과 남편을 믿고 흔쾌히 동참했다. 귀농 8년차에 접어들면서 고 대표는 제조에 집중하고 박 대표는 판매를 전담한다. 덕분에 소득도 안정적 단계에 접어들었다.

1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을 하던 주변의 반응은 이제 ‘대단하다’로 바뀌었다. 걱정이 응원으로 바뀌었다.

◆ 부모님은 영원한 선생님

부부는 부모님께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된장에서부터 삶의 방식까지 배운다. 귀농 1년 동안 아버지는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스스로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준비과정을 거치게 한 것이다. 그리고는 된장에 대한 모든 일을 넘겼다. 아들 내외가 독립하도록 뒤에서 지원만 했다.

박명희·고재훈 공동대표가 잘 발효된 누룩을 들어 보이고 있다.
대신에 3년 동안 일정한 대가(代價)를 지급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것은 일을 거들어 주는 인건비와 메주를 만드는 황토방, 된장제조시설에 대한 이익배당인 셈이다.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물론 된장을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면서도 간섭은 없었다. 철저하게 자녀의 독립성을 인정한 것이다.

부모님이 생산한 콩이나 참깨는 반드시 적정 가격을 주고 구입한다. 가족 간이지만 경영을 완전히 분리한 것은 ‘모든 갈등의 원인은 돈에 출발한다’는 아버지의 철학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박명희·고재훈 공동대표가 자신들이 만든 간장과 참기름을 살펴보고 디자인의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어머니의 열성도 만만찮다. 발아콩 특허를 받았다. 표고버섯과 오가피 우린 물로 콩을 불리고 싹을 틔워 발아 콩을 만드는 것이다. 발아 콩에는 비타민과 미네랄 등 생리활성화 성분과 항산화 성분도 증가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예천발아 청국장’이 세상에 나왔다. 이후 참기름과 선식 등으로 확장하면서 ‘회룡포장수진품’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저온 압착식으로 착유한 참기름에 도전

블루오션으로 여겨지던 된장이 어느 순간에 레드오션으로 변했다. 전통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된장 농가가 늘어나고 경쟁도 치열해졌다.

고재훈 대표가 들깨기름을 짜기 위하여 들깨의 분쇄작업을 하고 있다.
예천의 특산물인 참기름을 특화상품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뛰어들었다. 아파트를 팔아서 참기름 착유시설에 투자했다. 참기름을 생산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지역농산물을 사용한다. 부모님이 생산한 참깨를 사용하고, 부족하면 이웃에서 구입한다.

박명희·고재훈 공동대표가 저온압착식을 참기름을 착유하고 나온 깻묵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참깨를 140℃의 저온에 볶아 깻묵의 색깔이 연하다.
이런 원칙 때문에 ‘예천참깨’로 짠 진짜 ‘예천참기름’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원칙은 저온압착 착유와 주문식 소량 생산이다. 140℃의 저온에서 볶아서 기름을 짜는 방식이다. 저온이라 원재료의 영양소가 그대로 유지된다.

고재훈 대표가 부모님이 생산한 들깨를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 번에 소량 기름을 짜는 것도 장기 보관에 따른 산패를 줄이고 고품질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일주일에 12㎏ 정도의 참깨로 35병 내외로 생산해 바로 판매한다. 착유 즉시 병에 넣고 밀봉해 공기 접촉을 차단해 산패를 방지한다. 갈색 병을 사용하는 것도 산패 방지가 목적이다.

◆아기를 업고도 교육을 받는 열정 농부

유치원교사에서 스스로 된장녀로 변신했다고 말하는 박 대표는 열정적이다. 특히 교육에서는 그렇다. ‘유치원 교사라 된장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니 남들보다 2배는 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된장독을 열고 상태를 관리하는 모습.
남편과 함께 장류사업을 승계하면서 가장 취약한 분야였던 마케팅교육에 집중했다. 농업기술센터를 제집 드나들 듯이 했다. 농산물 판매와 마케팅 분야의 교육을 시작으로 블로그, 전자상거래 등 수많은 교육을 받았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아기를 업고도 교육을 받는 열정을 보였다.

건조작업 중인 메주.
정보화농업인회에 가입하고 교육을 받으면서는 된장과 간장을 인터넷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동료 회원들의 농산물을 함께 홍보하고 판매하는 품앗이 활동에도 앞장섰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15년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농산물마케팅 활성화 사례 우수상을 받았다. 소비자의 구매 후기는 반드시 읽어보고 생산과 관리에 반영한다.

◆역할 분담으로 합리적인 농장운영

농장 운영방식은 역할분담이 이루어져 있다. 부모님은 생산 원료인 콩과 참깨, 들깨를 재배를 맡았다. 콩과 참깨 들깨를 각각 6천600㎡씩 재배하고 생산물은 아들 부부에게 판매한다. 가족 간이지만 경영을 분리했다.

가마솥에서 삶고 있는 메주콩.
참기름과 들기름을 짜고 선식을 만드는 일은 고 대표의 몫이다. 귀농 전 양잠조합에서 식품가공을 했던 기술과 경력을 활용했다. 박 대표는 마케팅과 판매, 홍보활동, 소비자 관리를 맡았다. 주문과 발송을 하면서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소비자의 의견을 제품생산에 반영한다. 물론 노동력이 많이 드는 메주를 만들고 된장을 담그는 일은 공동작업으로 진행한다. 이 같은 역할 분담은 가족 간, 세대 간 갈등을 없애는 데에도 효과적이지만 주인의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참기름을 착유하는 모습.
◆바른 먹거리를 만드는 전통식품 명인이 꿈

이들 부부는 “누구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바른 먹거리를 만드는 원칙을 세우고 싶다”면서 “지역에서 생산되는 정직한 농산물로 정직하게 된장을 만들고 참기름을 짜겠다”고 입을 모은다.

회룡포장수진품에서 만드는 미수가루(선식), 꼬시다라는 브랜드로 나간다.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는 정직한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가공의 전 과정을 공개하는 것도 정직한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의 한 부분이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부모님의 전통기술을 전수해 전통식품 명인에 도전할 계획을 조심스럽게 내보이기도 했다. 체험농장을 운영해 학생들에게 전통음식의 중요성을 알리고 전통식품의 맥을 이어가는 백 년 가업의 기반을 차근차근 다져가겠다는 그림도 그리고 있었다.

회룡포장수진품에서 생산하는 된장과 간장, 고추장.
회룡포장수진품에서 생산하는 참기름과 들기름.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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